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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노무현처럼 하다가는 '38선' 절대로 못 넘는다!

[정태인-최태욱-박성민] 진보의 미래, 정치에 달렸다


http://www.pressian.com/books/article.asp?article_num=50101203175215&Section=01

 2010-12-03
 

 
보수와 진보, 건널 수 없는 강은…

프레시안 : 최근 들어서 진보·개혁 세력이 바라는 미래상을 그리고, 그것을 실현할 정책을 담은 책들이 계속 쏟아지고 있다. 지난 2007년 대선 패배, 2008년 금융 위기, 2009년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등을 계기로 진보·개혁 세력이 새로운 방향을 모색할 필요성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또 이명박 정부가 임기의 반환점을 돌면서 2012년 대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도 이런 책의 출간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참에 올해 나온 이런 책들 중에서 눈에 띄는 책 네 권(<진보 집권 플랜>, <리얼 진보>, <역동적 복지국가의 논리와 전략>, <진보와 보수 미래를 논하다>)을 중심으로 진보·개혁 세력의 현주소를 점검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먼저 네 권의 책을 평가해 보면?

최태욱 : 우선 비교적 최근에 나온 <진보 집권 플랜>(<플랜>)부터 살펴보자.

이 책은 여러 가지 주제를 일반 시민이 정리할 수 있도록 쉽게 설명하면서도 중요한 대목을 놓치지 않았다. 이 책의 핵심 주장 중 하나는 '결국은 정치다', 이렇게 요약된다. 신자유주의가 문제다, 말로만 떠들지 말고 대안 경제 모델을 제시해야 하는데, 그것이 가능해지려면 결국 정치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대안 경제 모델을 구현하는 방법도 일단은 무상 급식, 국민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등 이른바 생활 정치부터 시작해서 그것에 대한 국민의 이해를 높이고 동의를 구하자, 이렇게 주장하고 있는데 상당히 중요한 주장이다. 또 진보·개혁 세력의 집권 전략으로 이탈리아의 '올리브 동맹'을 소개했는데, <리얼 진보>에서 노회찬 대표가 말한 '민들레 연대'와 통한다.

정태인 : <플랜>을 읽고 나면, 누구나 '조국이 정말 매력 있는 사람이구나!'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물론 조국 교수가 정치인이 아니어서 아쉽지만. (웃음)인터뷰어(오연호)의 기획과 인터뷰이(조국)의 식견이 돋보이는 책이다. 다만 법학자가 모든 것을 다 알 수 없으니까, 독자들의 생각과 다른 점도 있을 것이다. 그런 점을 염두에 두고 매력 있는 지식인과 토론하듯 읽으면 재미있을 것이다.

박성민 : <플랜>을 보면서, 내용도 내용이지만 20대, 30대 젊은이들을 타깃으로 한 조국 교수의 화보집인 줄 알았다. 책 곳곳에 화보 같은 조 교수 사진이 실려 있으니까. (웃음)이 역시 이 책의 장점이다. 이 책의 타깃이 정확히 20대, 30대 젊은이를 염두에 뒀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레시안 : <리얼 진보>는 어떻게 읽었나?

최태욱 : <리얼 진보>는 우선 제목이 마음에 안 든다. (웃음)'리얼'은 뭐고, 아닌 것은 뭔가? 지금 진보 세력에게 필요한 것은 '유연성'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선명성'만 강조한 게 아닌가? 사실 읽어보면 내용은 그렇지도 않은데…. 더구나 앞서 발표한 글들을 묶은 책이라서 상호 모순되는 글들도 있었고, 기획 자체에 점수를 주기는 힘든 책이었다.

다만 이 책의 핵심은, 이 자리에 있어서 하는 얘기가 아니라, 정태인 소장이 '사회 경제'를 강조한 대목이다. 한국 사회의 미래에 희망을 주는 대안을 찾으려는 진보·개혁 세력이 복지 국가와 함께 염두에 둬야 할 또 다른 화두를 잘 제시했다. 사실 정태인 소장 얘기를 빼놓고는 그냥 좋은 얘기라서…. (웃음)

<진보와 보수 미래를 논하다>(<진보와 보수>)는 한국의 합리적 보수주의자, 이른바 '중도 보수'의 생각을 살필 수 있어서 좋았다. 언론 연재가 골격이라서 깊이를 기대할 수는 없지만, 보수와 진보의 소통의 장을 마련한 점은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특히 이 책의 결론에 최장집 교수와 박세일 교수의 대담에 인상 깊은 대목이 있다.

박세일 교수가 "구체적인 정책 논쟁을 하면 보수든 진보든 한 70~80%는 같은 결론에 이를 수 있다" 이런 얘기를 했다. 그렇다면, 나머지 30%만 타협하고 양보하면 보수, 진보가 같이 좋은 사회를 만들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 이런 가능성이 생기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했었다.

정태인 : 방금 최태욱 교수가 <리얼 진보>의 한계를 평했는데, 이 책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진보의 미래>를 반박하고자 급하게 기획한 것이었다. 노 전 대통령의 책이 대중의 주목을 받으면서, 원래 자신의 정체성을 '진보'로 규정했던 이들이 '이제 진보라는 말까지 親盧 그룹이 빼앗아가겠구나!' 이런 위기의식 속에서 수세적으로 기획된 책이다.

<진보와 보수>를 읽으면서 나는 한국의 이른바 합리적 보수주의자에 대해서 실망했다. 구체적인 정책 논쟁에서 진보, 보수가 70~80% 정도는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은 그동안 진보가 한국 사회의 미래를 걱정하는 이라면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상식적인 얘기를 해왔기 때문이다. 이런 상식적인 얘기에도 보수가 동의를 해오지 않았으니까 문제였지 않나?

이 책에서도 보수, 진보 사이에 건널 수 없는 강과 같은 것도 많이 나온다. 경제만 놓고 보면, 우선 보수는 여전히 토목·건설에 굉장한 집착을 보인다. 또 김대중·노무현 정부도 자유롭지 못한 서비스 산업화, 또는 민영화 논리를 되뇌는 것도 보수의 특징이다. 이런 신자유주의 논리는 삼성으로 대표되는 재벌-월스트리트로 대표되는 미국 금융 자본-한국의 기획재정부가 정확히 일치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런 속내를 확인하면, 현대자동차가 현대건설과 같은 폭탄이 될 만한 기업의 인수에 집착하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앞으로 여전히 토목·건설은 괜찮을 것이라는 보수의 경제에 대한 생각이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그토록 한국의 보수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집착하는 것도 바로 그것이 전면적인 서비스 산업화의 계기가 되리라는 판단에서다.

박성민 : 사실 <진보와 보수>가 제대로 된 소통의 장을 열었는지 미지수다. 진보 쪽 인사들이야 지난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 참여한 분들이니 날카롭게 창을 휘두를 수가 있었겠지만, 보수 쪽 인사들은 대부분 현직에 있는 처지에 어떻게 현안을 놓고 자기 속내를 얘기할 수 있겠나?

프레시안 : <역동적 복지 국가의 논리와 전략>(<복지 국가>)은 어떻게 읽었나?

최태욱 : 네 권의 책 중에서 제일 낫다. 한국에서 복지 국가를 실현하고자 실천하는 이들의 고민을 한곳에 모았다. 특히 이 책을 펴낸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한국이 추구해야 할 구체적인 복지 국가의 모델로 '역동적 복지 국가'를 내세웠는데, 이 책을 읽으면 그 모델의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최근에 진보·개혁 세력의 관심이 복지 국가로 모이고 있는데, 그것은 복지 국가가 바로 시대정신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런 시대정신의 구체적인 상을 가장 잘 드러낸 책이라고 본다. 다만 <플랜>에서 강조했던 정치, 제도에 대한 관심이 다른 것과 비교했을 때 적어서 아쉬웠다.

정치, 제도를 통하지 않고서는 복지 국가를 구현할 수 없다는 점을 염두에 두면 이것은 아주 큰 약점이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처럼 한국에서 복지 국가를 구현하려는 이들이 더 심사숙고해야할 대목이 이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분들은 책을 어떻게 읽었는지 궁금하다.

박성민 : 책을 읽는 내내 이런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철학, 정책 중요하다. 하지만 그런 철학, 정책을 구현하려면 집권을 해야 하고, 집권을 하려면 선거를 해야 한다. 그런데 이 네 권의 책에는 그런 얘기는 간단히 언급한다. 마치 좋은 철학, 정책만 있으면 당장이라도 집권할 수 있는 듯한 모습이다.

방금 최태욱 교수가 정치, 제도 얘기의 공백을 얘기했는데, 사실은 정당 구조, 선거 제도, 공천 시스템, 지구당 부활 더 나아가서는 이런 변화의 계기가 될 개헌 이런 것에 대한 논의가 훨씬 중요하다. 그런데 네 권 모두 다 이런 내용에 대해서는 사실상 침묵하고 있다. 이런 논쟁을 주도하는 이들이 정치인이 아닌 지식인, 시민운동가여서 그런 걸까?

세계 금융 위기, 우리가 알던 세상의 종언

정태인 : 최태욱 교수가 지적했듯이 <복지 국가>는 잘 만든 책이다. 이 책이 훌륭한 이유는 과거에는 개량주의자로 욕을 먹었던 사람들, 그러니까 1990년대부터 진보 쪽에서 여러 가지 구체적인 복지 정책을 실천했던 이들의 고민과 경험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책의 한계도 명백하다.

프레시안 : 한계라면 어떤….

정태인 : 사실 <복지 국가>를 포함한 네 권의 책 모두 지금까지 그 여파가 계속되는 2008년의 금융 위기에 대한 고민이 없다. 1929년 대공황보다 더 큰 전대미문의 사건이 일어났는데도 금융 위기 이후에 과거의 생각이 어떻게 수정되어야 하는가, 이런 고민이 보이지 않는다. 여전히 금융 위기의 실체가 파악이 안 되었기 때문일까?

보수뿐만 아니라 진보도 '그래, 우리가 옳았어!' 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금융 위기의 메커니즘을 살피면서, 이 위기를 극복할 대안을 모색하려는 태도를 보여야 하는데 그런 것이 없다. <리얼 진보>에 그런 고민의 단초가 보이기는 하는데, 원론적인 언급 수준에서 그쳐서 아쉬웠다.

지난 수십 년간 한국의 보수가 추종해온 세상의 틀이 붕괴된 것인데 <진보와 보수>에서는 그런 보수의 위기의식을 찾아볼 수 없다. <복지 국가>도 마찬가지다. 복지 국가는 금융 위기를 통해서 드러난 여러 가지 문제에서 자유로울까? 아니다. <복지 국가>가 본보기로 제시한 나라들이 스웨덴, 핀란드와 같은 북유럽 국가들인데 이 나라도 똑같이 위기를 맞았다.

복지 제도가 세계 자본주의 구조적인 문제까지 해결해주리라고 여기는 것은 큰 착각이다. 이들 복지 국가도 부동산 투기, 금융 신용의 팽창이 있었고 외환 위기를 맞았다. 물론 이들 국가들이 미국과 같은 나라에 비해서 위기에서 빨리 빠져나온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금융 위기 이후의 복지 국가의 모습을 고민해야 하는 과제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민주당, 국민참여당에 포진한 자유주의 세력도 마찬가지다. 서비스를 복지 차원에서 접근할 것인가, 산업 차원에서 접근할 것인가? 민주당의 70% 이상, 유시민 씨를 포함한 국민참여당의 상당수는 서비스를 산업으로 생각한다. 이들은 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한미 FTA나 서비스 산업화를 놓고 여전히 잘한 일이라고 여긴다. 금융 위기가 여전히 남의 일인 것이다.

한미 FTA가 노무현 정부의 원래 계획대로 2006년 말까지 비준을 완료했다면 한국 경제는 엄청난 타격을 받았을 것이다.

'거품 경제학' 없는 진보는 '거품'

프레시안 : 방금 정태인 소장이 중요한 지적을 했다. 기왕 얘기가 나온 김에 2008년 세계 금융 위기의 직접적인 원인이었던 부동산 얘기를 잠깐 하고 넘어가자.

정태인 : 부동산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무엇인지 정교하게 보는 이론이 현재로서는 없다. 어처구니없게도 주류 경제학 자체는 거품을 인정하지 않는다. 시장에서 모든 정보를 다 반영한 합리적인 가격이 결정되기 때문에, 우리가 거품 가격이라고 보는 것도 정상으로 여긴다. 이런 전제가 있으니 거품에 대한 대응도 수세적이다.

우선 어떤 시점, 어느 가격이 거품인지를 놓고 누구도 제대로 답변을 못한다. 또 설사 자산 가격에 거품이 있다고 하더라도, 거품을 줄이는 데는 방법을 강구하는 데는 회의적이다. 거품을 터뜨리려면 이자율을 높여야 하는데, 그것은 바늘로 풍선에 구멍을 뚫는 격이니 차라리 거품이 터진 다음에 수습하는 게 비용이 덜 든다는 논리다.

물론 요즘 들어서는 주류 경제학자도 이런 접근에 대해서 회의를 하고 있다. 거품에 대한 경제학이 드디어 시작된 것이다. 경제학의 상황이 이러니, 노무현 정부 때 부동산 문제를 놓고 제대로 대응을 못했던 게 어쩌면 당연했다. 그 때는 20세기 초반에 나온 헨리 조지의 이론대로 종합부동산세를 올리면 부동산 문제가 해결되리라고 소박하게 생각했다.

공급은 공공 임대 주택을 지으면 되지, 이런 식으로. 부동산이 경제 전체에 미치는 효과를 염두에 둔 대응을 내놓지 못했던 것이다. 사실 이번 금융 위기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부동산이 경제 전체에 미치는 효과가 얼마나 큰가? 집값이 오르면 은행에 담보를 잡혀서 돈을 빌리고, 자산이 늘어난 은행은 대출을 늘리고….

그나마 이렇게 부동산이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염두에 두고 노무현 정부에서 했던 게 LTV(Loan To Value) 정책이었다. 부동산 자산 가격에 따라서 담보 대출 금액을 규제한 것이다. 미국 경제가 부동산 때문에 휘청대는 걸 보면, 이 LTV 정책은 얼마나 선진적인 정책이었는지 알 수 있지 않나? 물론 한나라당은 LTV 정책 도입도 반대했었지만….

프레시안 : 그렇다면, 진보·개혁 세력이 집권을 하더라도 부동산 문제를 해결할 뾰족한 수단이 없다는 얘긴가?

정태인 : 그렇다. 이번 세계 금융 위기에서 확인할 수 있었듯이 부동산, 금융이 상호작용해 거품이 커져서 경제 전체에 영향을 주는 것을 막을 방법을 궁리해야 한다. 일종의 '허들 정책'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러니까 층층이 규제가 있어서 거품에 계속 제동이 걸리고 더 나아가 그렇게 막힌 돈이 제조업에 기반을 둔 중소기업으로 흘러가도록 하는….

세계 금융 위기를 보면서 진보·개혁 세력이 이런 새로운 경제학을 내놓지 않으면 절대로 대중의 신뢰를 얻을 수 없다.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에서도 얘기해왔고 한나라당이 지금도 얘기하는 '성장', '혁신' 이런 얘기만 되뇌는 데서 벗어나야 하지 않나? 여전히 진보·개혁 세력에게 그런 고민이 부족한 듯하다.

21세기의 새로운 시대정신, '복지 국가'

프레시안 : 아까 최태욱 교수가 복지 국가가 시대정신이다, 이런 얘기를 했다. 실제로 진보·개혁 세력이 과거 어느 때보다 복지 국가를 내세우고 있다. 이런 식이라면 다음 선거에서 진보·개혁 세력은 복지 국가를 전면에 내세울 것 같은데….

정태인 : 아무래도 6·2 지방 선거의 핵심 쟁점이었던 무상 급식의 여파다. 무상 급식이 중요한 선거에서 폭발력 있는 쟁점으로 부각하는 것을 보면서 이제는 정치인이든 지식인이든 복지 화두를 누구도 부정하지 못하게 되었다. '특목고', '뉴타운'이 열쇳말이었던 지난 2008년 4월 총선과는 크게 달라진 모습이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는 최근 들어서 대중의 정서가 달라진 것도 한몫했다. 1997년 외환 위기 이후로 한 10년간 이런 생각이 대한민국에 팽배했다. '나는 부동산으로 몇 십억 원 벌어서 부자가 될 수 있다', '내 아이는 사교육 경쟁에서 승리해 특목고, 서울대 갈 수 있다' 이런 식의…. 2008년 총선 때, 이런 흐름이 한 절정에 달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이른바 '5대 불안', 그러니까 일자리 불안, 교육비 불안, 주거 불안, 건강 불안, 노후 불안이 이렇게 환상에 빠져서 10년을 살아온 이들의 삶을 덮쳤다. 이제는 누구나 안다. '나도 예외가 아니구나!'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런 고민을 하는 이들이 자연스럽게 복지로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변화가 있기 때문에 심지어 한나라당도 복지 제도를 외면하지 못하는 것이다. 물론 진보·개혁 세력의 보편 복지와 한나라당의 선별 복지 사이의 차이가 있지만, 한나라당 역시 선별 복지의 양을 늘리는 추세를 거역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앞으로 복지가 한국 사회에서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핵심 화두가 될 것은 확실하다.

다만 앞으로 복지 국가를 실현하는 일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 어쩔 수 없이 증세 문제가 제기될 수밖에 없다. 여전히 대중이 생각하는 복지는 가능하면 (세금을) 덜 내면서도 복지는 더 받는 식이니까. 진보·개혁 세력이 이런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대중을 설득할 수 있는 방안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박성민 : 복지에 대한 관심의 한 축에 대중의 변화가 있다는 지적은 의미심장하다. 거칠게 구분을 하자면, 1970~80년대에는 국가 권력에 대한 회의가 확산되면서, 민주주의가 주된 화두였다. 그런데 1987년 민주주의로 이행하고 나서는 1990년~2000년대에는 진보에 대한 회의가 일면서 민주주의에 대한 관심이 욕망으로 바뀌었다.

세계화의 흐름 염두에 두더라도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이 신자유주의로 경도되었고, 이른바 386(486) 세대들이 욕망을 좇는 흐름에 기꺼이 몸을 던지지 않았나? 부동산, 주식 투자(투기?)에 뛰어들고, 룸살롱을 다니고, 골프를 치러 다니고…. 그러다 지금은 반대로 그 욕망, 즉 시장에 회의를 하는 시기로 접어든 듯하다.

정태인 소장의 말처럼 심화된 양극화 등을 보면서 욕망의 정치를 실현하는 게 어렵다, 이런 걸 각성한 듯하다. 만약에 지금도 아파트 값이 몇 억씩 오르고 또 주식으로 큰돈을 버는 이들이 주변에서 보이면 쉽게 그런 환상을 포기하겠나. 그런데 많은 이들이 한 20년의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욕망의 정치가 사실은 '바닥으로의 경주'라는 진실을 알아버린 것이다.

이렇게 각성한 대중들이 정치·경제에서 사회·문화로 관심의 초점이 바뀌고 자연스럽게 복지 화두에 관심을 쏟게 된 것이다.

최태욱 : 일단 현실 정치 세력도 복지를 최우선 과제로 놓았다. 우선 진보신당, 민주노동당에 이어서 민주당도 보편 복지를 강령에 넣었다. 앞으로 내용을 봐야 알겠지만, 박순성 동국대학교 교수가 원장을 맡은 민주당의 공식 싱크탱크인 민주정책연구원이 강령에 부합하는 복지 정책을 내놓으리라고 생각한다.

한나라당의 변화도 놀랍다. 구체적인 내용을 봐야겠지만, 공공연히 70% 복지를 거론하는 상황이다. 박근혜 전 대표가 복지 국가를 거론하는데 이어서 남경필, 원희룡, 홍준표 의원 등이 참여했다. 정태인 소장의 얘기처럼, 한나라당이야 선별 복지의 틀을 내세우겠지만, 그 양과 질은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좋아질 수 있다.

이런 각 정당들의 움직임을 보면, 아까 잠깐 언급한 이른바 '연대'의 가장 중요한 접착제가 복지가 될 가능성도 있다.

복지 세력 없이 복지 국가도 없다

프레시안 : 그동안 복지는 진보·개혁 세력의 무기였다. 그런데 이렇게 진보신당, 민주노동당, 민주당, 한나라당 모든 정당이 복지를 내세운다면, 다음 선거에서 설사 복지가 화두가 되더라도 진보·개혁 세력에게 유리하다고 할 수 있을까?

최태욱 : 6·2 지방 선거 이후에 한나라당이 '개혁적 중도 보수 정당'을 표방하고 나섰다. 이런 분위기에 맞춰서 한나라당 내부의 중도 보수 정체성의 정치인 몇 사람이 "중도 보수 정당으로 갈 거면 부자 감세를 철회해야 한다," 이렇게 얘기를 해도 메아리가 없다. 이게 바로 한나라당의 한계다.

만약에 선거에서 복지가 핵심 쟁점이 된다면, 시민들은 누가 진심으로 복지 국가를 위해서 체계적인 정책을 내놓고 실행할지 지켜볼 것이다. 이런 실천의 핵심은 반 복지 세력 돌파다. 한국 사회의 반 복지 세력은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한국 사회 주류다. 재계, 정계, 관계, 조·중·동을 비롯한 언론 등 이른바 신자유주의 세력이다.

이런 신자유주의 반 복지 세력은 앞으로도 끊임없이 복지 국가로 가는 길을 가로막을 것이다. 그런데 한나라당이 자신의 핵심 지지 세력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의 이익에 반해서 복지 국가를 만들 수 있을까? 한나라당이 중도 보수를 표방하면서도 부자 감세 정책을 철회하지 못하는데서 알 수 있듯이, 지금의 한나라당으로는 그렇게 가기가 매우 힘들 것이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면 민주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은 반 복지 세력에 맞서서 복지 국가를 지향하는 정체성을 내세우면서 구체적인 방안을 자신 있게 내놓아야 한다. 아까 정태인 소장이 얘기했듯이, 핵심은 증세다. '어떤' 복지 국가를 만들기 위해서 '이런' 증세 방안을 내놓겠다, 이렇게 할 수 있어야 복지가 쟁점이 될 때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다.

정태인 : 글쎄…. 나는 비관적이다. 민주당이 방금 최 교수가 조언한 대로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까도 얘기했지만 증세를 말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가령 무상 급식을 찬성하던 시민도, 세금을 더 내서 공공 임대 주택을 늘린다는 정책에 선뜻 동의하기 쉽지 않다.

재원을 마련하려면 흔히 얘기하는 부유세 즉 자산세를 걷어야 하는데, 중산층은 대부분 예금, 주식, 부동산 등의 자산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선뜻 찬성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중산층을 설득해야 하는데, 민주당 의원들이 일시적인 대중의 반감을 무릅쓰고 그것을 실천할 수 있을까? 대다수 민주당 의원은 그럴 의지가 없다.

거기다 진보·개혁 세력 안에는 여전히 시장을 통한 복지에 미련을 가진 이들이 많다. 서비스 산업화를 여전히 주장하는 국민참여당의 유시민 씨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국·공립 보육원을 더 짓기보다는 시장에서 사립 보육원들이 경쟁하는 게 훨씬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결국 보편 복지보다는 시장 복지를 지지할 테고, 그건 한나라당과 똑같다.

결국 대선에서 설사 복지가 쟁점이 되더라도 한나라당, 민주당, 국민참여당이 주도하는 식이라면 말잔치만 벌이면서, 실제로는 한나라당의 의도대로 시장 복지-선별 복지만 강화하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된다. 물론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앞으로 2년간 열심히 노력을 해야겠지만….

최태욱 : 보편적 복지 국가의 건설에 관한 것이라면, 사실은 나도 비관적이다. 아주 교과서적인 얘기지만 복지 국가가 만들어지려면 복지 세력이 있어야 한다. 복지 국가를 원하는 시민과 복지 국가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지키려는 정치 세력이 있어야 한다. 이들이 복지 동맹을 형성하고 버틸 때, 복지 국가가 가능하다.

특히 복지의 맛을 본 시민이 중요하다. 한 번 복지의 맛을 본 시민은 복지 국가의 강한 지지자가 되고, 이들의 복지 선호를 대변하는 정당이 있다면 웬만해서는 복지가 후퇴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복지의 맛을 본 시민이 많지 않고 또 복지 국가를 자신의 정체성으로 내세우는 힘 센 정당도 없다.

정태인 소장이 잘 지적했듯이 시민부터 불안하다. 무상 급식에 환호했던 시민들이 증세해도 복지 국가로 가자, 이렇게 선뜻 찬성할 가능성은 적다. 또 정치권도 말로는 다들 복지 얘기를 하지만 민주당 내에도 한나라당 정도는 아니지만 신자유주의를 지지하는 반 복지 세력이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나 역시 정 소장처럼 비관적일 수밖에 없다. 복지 세력이 튼튼하지 않은 한국의 상황에서 어느 정당이 책임을 지고 복지 국가 건설에 나서겠는가? 좀 더 부연하면, 복지 국가를 만들려면 현실 정치에서 '포괄의 정치(politics of inclusion)'가 작동되어야 한다.

아까 한국에서 복지 국가를 세우기 어려운 이유가 주류를 차지하는 신자유주의 반 복지 세력 탓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에 맞선 친 복지 세력이 형성되어야 하고, 시민사회에서 정치력을 발휘할 수 있는 강력한 조직도 필요하다. 유럽의 복지 국가 같은 경우에는 강력한 노동조합이 그런 역할을 했었다.

한국의 경우에는 그런 친 복지 세력이 될 수 있는 이들이 비정규직, 자영업자다. 현재 정규직, 비정규직, 자영업자가 3분의 1씩 차지한다. 그런데 정규직 노동자는 복지 국가에 대한 바람이 덜 할 것이다. 그들은 기업 복지도 어느 정도 돼 있는데다가, 시장 복지에 접근할 만한 여력이 되니까.

그런데 비정규직, 자영업자는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시장 복지에 접근할 만한 여력도 없다. 그들이야말로 복지 국가로부터 가장 수혜를 받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조직이 없다. 이런 비정규직, 자영업자의 조직화가 시급하고, 더 나아가 이들의 정치 세력화가 필요하다.

이런 친 복지 세력의 선호가 정치 결정 과정에 제도적으로 반영되어야 한다. 즉, 그런 친 복지 세력을 안정적으로 대표할 수 있는 정당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 정당이 민주당인가? 민주당은 중산층과 서민을 대표하는 정당이라고 말한다. 말이 중산층과 서민이지, 사실상 한국 사회의 구성원 대다수를 대표한다는 얘기다.

도대체 누구의 정당인지 헷갈린다. 모두를 대표한다고 자신의 정체성을 내세우는 건 실제로는 아무도 대표하지 않는다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민주당이 지금까지 해온 모습을 봐도 그렇고. 이렇게 비정규직, 자영업자와 같은 친 복지 세력을 대표할 수 있는, 포괄할 수 있는 정당이 부재한 상황에서 복지 국가 건설이 쉽게 될 리가 없다.

이런 포괄의 정치가 작동될 때 이른바 '사회적 합의'도 가능하다. 포괄의 정치가 없는 상황에서는 사회적 약자 누구도 테이블에 나가지 않는다. 테이블에 나가봤자 법제도로 이어지지 않을 테니까. 그래서 아까 <복지 국가> 얘기를 하면서 강조했듯이, 포괄의 정치가 작동될 수 있는 정치, 제도 개혁이 중요하다.

정태인 : 친 복지 세력으로 묶일 수 있는 이들 중에는 비정규직, 자영업자뿐만 아니라 주부, 노인과 같은 비경제 활동 인구도 있다. 정확한 통계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이 사람들이야말로 대표적인 한나라당에게 표를 주는 이들 아닌가. 이런 점까지 염두에 두면 더 비관적이 되는데….

'복지', 한나라당의 무기도 될 수 있다

박성민 : 그 동안 정책이 진보해온 역사를 살펴보면 그 동력은 정치 세력의 의도, 결단이라기보다는 선거였다. 선거는 복지 정책의 도입을 빨라지게 하고, 범위를 넓히는 효과를 낳는다. 극단적으로 얘기하면, 정치인은 선거 때 팔릴 만한 상품이라면 즉 표만 되면 뭐든지 할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2012년의 총선, 대선을 앞둔 지금 시점에서 한나라당 국회의원, 특히 수도권에 기반을 둔 이들은 공황 상태에 빠져 있다. 지난 6·2 지방 선거 결과를 보면서 큰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20~30대의 투표율이 크게 늘었다. 이전 2008년 총선 때는 46.1%였는데, 6·2 지방 선거 때는 8.3포인트가 늘어서 54.4%가 되었다. 전 세대 중에서 20~30대만 늘었다.

20~30대 투표율보다 더 중요한 것은 40대의 표심이다. 2000년대 이후 주요 선거에서 한나라당은 40대에서 민주당에 진 적이 없다. 그런데 이번 6·2 지방 선거에서 민주당이 처음으로 이겼다. 이런 상황에서 2012년 총선, 대선에서 한나라당에서 복지가 아니라 뭔들 못하겠나?

정당은 선거 때 자신의 지지 기반에는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외연을 확대하는 것에 골몰한다. 방금 정태인 소장이 잠깐 언급했지만, 한국 사회에서 저소득, 저학력 계층은 전통적으로 한나라당을 지지한다. 이번 6·2 지방 선거에서 볼 수 있는 더 확실한 지표가 하나 더 있다. 수도권에서 60대 이상이 오세훈 후보에게 70%, 김문수 후보에게 80%의 표를 줬다.

수도권 60대 이상에서는 호남 사람, 영남 사람의 구분도 없었다. 절대 다수가 한나라당에게 표를 준 것이다. 왜 이랬을까? 이들에게는 공통의 역사적 경험이 있다. 바로 천안함이 일깨워준 냉전의 경험이다. 이런 공통의 역사적 경험 앞에서 세금 덜 내고, 더 내고 이런 쟁점은 아무 것도 아니다.

자, 이런 선거 결과를 염두에 두면 한나라당이 한미 동맹 강화, 대북 강경 입장을 고수하는 한 2012년 선거에서 수도권의 60대 이상이 이탈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렇다면, 한나라당이 외연을 확대할 세대는 어디인가? 바로 40대다. 이들을 다시 한나라당으로 끌어오는 게 핵심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사실 40대는 한국 사회에서 가장 복지에 민감한 세대다. 일단 부모 중에 치매가 걸린 이들이 부지기수다. 맞벌이를 하는데 누구 부모를 간병할 것인가? 자기와 부인 건강도 문제다. 건강 진단을 할 때마다 큰 병이나 걸린 것은 아닌지 가슴이 덜컥한다. 직장에서도 언제 잘릴지 모른다. 아이들 대학교 등록금도 걱정이다. 이 모든 게 복지의 문제 아닌가?

이런 상황에서 한나라당이 선거 때 왜 복지 얘기를 하지 않겠나? 진보·개혁 세력이 성장 얘기를 하는 것보다 한나라당이 복지 얘기를 하기가 훨씬 쉽다. '분배'는 뺏어서 나누는 진보·개혁 세력의 용어 같은데, 복지는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러니까 보수도 수용할 수 있는 용어로 이미 자리매김하고 있으니까.

한나라당이 자신의 (60대 이상의 지지층은) 지키면서도 40대에게 호소력이 있는 이 복지를 왜 선거 때 주장을 안 하겠나?

프레시안 : 선거 때 복지가 부각될수록 한나라당에 유리할 수도 있다?

박성민 : 물론 어느 정당에 유리할지 불리할지 확정할 수는 없다. 아까 정태인 소장이 지적한 것처럼 복지와 관련해 가장 중요한 문제는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지이다. 다른 세대와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자산을 많이 가지고 있는 40대가 재원 부담을 염두에 두고 복지에 소극적일 가능성도 충분히 있으니까.

그렇다면, 오히려 성장을 통해서 재원을 마련해 복지를 확충하겠다는 한나라당과 같은 보수의 주장이 진보·개혁 세력의 얘기보다 더 대중에게 호소력이 있을 수도 있다. 진보·개혁 세력이 40대에게 호소력이 있는 정교한 재원 마련 방안을 마련하고 복지를 주장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복지에 대한 강조가 자충수가 될 수도 있고.

그들의 거짓말 : 신자유주의→성장→복지?

정태인 : 문제의 핵심은 한나라당이 선호하는 신자유주의를 고집하다가는 성장을 통한 재원 마련이 불가능하다는 데 있다. 장하준 교수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김희정·안세민 옮김)에도 나오지만(13장 :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든다고 우리 모두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신자유주의는 지난 30년의 세월 동안 성장을 가속화하는 데 실패했다.

극적인 예를 들어보자. 복지 국가 스웨덴이 휘청거리면서 '스웨덴 병' 이런 얘기가 나온 게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후반까지이다. 그 때 스웨덴이 추진했던 게 바로 규제 완화와 같은 신자유주의 정책이었다. 스웨덴은 금융 규제를 완화하고, 유동 자산이 부동산으로 흘러가는 걸 방치했다. 인위적 평가 절하로 수출을 늘리는 정책을 썼다.

그 결과는 참담했다. 스웨덴의 부동산, 주식과 같은 자산 가격이 폭등하면서 잠깐은 성장률이 높아지는 것 같더니 곧바로 경제 위기를 맞았다. 예정된 결과였다. 신자유주의라는 게 거칠게 말하면 자산에 대한 세금을 깎아주는 것인데, 그렇게 되면 거품이 생기고, 그런 거품이 되레 성장의 발목을 잡는 것이다.

왜냐하면, 부동산, 주식 등 자산에 거품이 생겨서 그 분야의 수익률이 높아지면, 자산을 가진 이들이 제조업에 투자할 생각을 하지 않고 투기에 눈을 돌린다. 제조업 투자가 안 되니 고용이 안 되고, 기껏해야 질 낮은 일자리만 양산된다. 이런 메커니즘 속에서 전체 성장률은 떨어지는 것이다. 그러다 거품이 터지면 이번 세계 금융 위기와 같은 사태를 맞고.

프레시안 : 그런데 대중에게 그런 것을 설득하기가 쉽지 않다.

정태인 : 그렇다. 부동산, 주식에 투자해서 돈을 번 사람이 몇 사람이나 있겠나? 대부분은 잃었을 것이다. 그런데 언론에 나오는 사람은 주식에 투자해서 돈을 많이 벌었다는 박경철 씨 같은 사람이다. 대중에게 환상을 심어주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바로 '신자유주의→성장→복지'와 같은 논리가 확산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진보·개혁 세력이 어떻게 할 것인가? 이들이 부동산, 주식에 세금을 부과하고, 중소기업의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정책을 써야, 일자리가 늘어나고 성장률이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을 설득해야 한다. 스웨덴, 핀란드도 시장 중심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버리면서 비로소 다시 성장률이 올랐다. 그런데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실패했다.

민주당이든 다른 진보·개혁 세력이든 '신자유주의→성장→복지' 논리를 극복하지 못하면, 여전히 토목·건설 산업과 서비스 산업에만 매달리다가는 절대로 한나라당을 이길 수 없다. 잠재적인 친 복지 세력 비정규직, 자영업자, 노인·여성·20대와 같은 비경제 활동 인구를 설득할 논리, 정책을 개발해야 한다.

최태욱 : 박성민 대표의 지적에 동의하면서 이런 생각도 들었다. 한나라당이라도 복지에 앞장서는 것도 좋은 일 아닌가? 물론 그들은 정태인 소장이 지적한 대로 시장에 기반을 둔 보편 복지가 아닌 선별 복지를 주장할 것이다. 그래도 그들이 앞장서서 복지가 확충되면 그 만큼 많은 사람이 복지의 맛을 볼 수 있다.

1970~80년대도 처음부터 민주화 세력이 많았던 게 아니다. 여러 가지 일을 거치면서 조금씩 지지자가 많아지지 않았나? 복지 세력 역시 마찬가지다. 한나라당이 앞장서서 복지를 확충하고, 그만큼 복지의 맛을 본 세력이 늘어나니까. 그런 점에서 복지 국가를 얘기하는 박근혜 전 대표를 긍정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박성민 : 한나라당 내에서도 박근혜 전 대표뿐만 아니라 복지 국가를 내세울 수밖에 없는 이들이 많다. 모두 수도권에서 2012년 총선에서 승리가 불안한 이들이다. 이들이 선거 때 복지를 전면에 내세운다면, 그래서 한나라당이든 민주당이든 복지 확충이라는 제도적 성과로 이어진다면 그 역시 정책의 진보 아닐까?

뭉치면 산다? 뭉쳐도 죽는다!

프레시안 : 최태욱 교수, 박성민 대표가 지적했듯이 복지 국가가 실현되려면 그것이 현실 정치의 의제가 되어야 한다. 최근에 복지 국가를 지향하는 진보·개혁 세력의 연대를 요청하는 목소리가 높다. 문성근 씨의 '100만 민란 프로젝트', 김기식 참여연대 정책위원장의 '빅 텐트' 등이 구체적인 안인데…. 이런 움직임을 어떻게 봐야 하나?

박성민 : 흔히 한국 사회를 분석할 때 영남/호남, 산업화/민주화, 보수-중도-진보 등으로 분류를 한다. 그런데 현실 정치를 염두에 두면 이런 분류가 그다지 신통치 않다. 보수가 다 한나라당 지지자인 것도 아니고 또 민주당 지지자가 다 진보인 것도 아니고. 현실 정치를 염두에 둔 제대로 된 분류가 필요한데, 아직 그런 틀을 만들지 못했다.

현실 정치를 고려하면, 지난 20년간 한국 정치를 규정하는 것은 바로 '90년 체제'다. 1990년 3당 합당을 하면서 부산·경남(PK), 대구·경북(TK), 충청도가 결합했다. 이때의 충청도 세력이 떨어져 나와서 자민련, 자유선진당 등으로 이어지면서 선거 때마다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고 있지만 큰 덩치인 PK-TK 연합은 여전히 깨지지 않고 있다.

바로 이 PK-TK 연합이야말로 바로 선거 때마다 무조건 한나라당을 찍는 굳건한 지지 기반이다. 이 반대편에는 한나라당을 찍어본 적도 없고, 찍을 것 같지도 않은 반한나라당 세력이 있고, 그 사이에 이른바 당파성이 없는 '중도'라고도 불리는 '무당파'가 있다. 내가 보기에 한나라당의 지지 기반은 투표율에 상관없이 38%다.

이렇게 38%를 잡은 이유는 몇 가지 근거가 있다. 1997년 대선을 생각해 보자. 한나라당으로서는 그 때 최악의 선거를 치른 셈이었다. 외환 위기 직후였고, 이인제가 나갔다. 그런 최악의 조건에서도 이회창 후보가 38.2%를 가져갔다. 이번 6·2 지방 선거는 어떤가? 한나라당이 참패했다지만, 광역의원 비례대표 투표에서 한나라당이 39.8%를 가져갔다.

이명박 정부, 한나라당에 대한 불신이 상당히 큰 지금도 여론 조사를 해보면 정권 재창출에 동의하는 비율이 38.4%다. 또 한나라당을 찍겠다는 이들의 비율도 38.9%다. '90년 체제'가 지속되는 한, 어떤 조건의 선거에서도 무조건 한나라당을 찍는 이들이 대략 38%는 존재하는 것이다.

정태인 : 38선이네. 38선을 넘어야 하는구나! (웃음)

박성민 : 그렇다면, 반한나라당 세력은? 최대로 봤을 때 35%다. 1997년에 한나라당이 바닥을 쳤다면, 진보·개혁 세력의 바닥은 지난 2007년이다. 그때 이명박 후보와 이회창 후보의 합이 64%다. 그리고 정동영, 문국현, 권영길 후보의 합이 딱 35%였다. 기존의 한나라당 고정 지지층 38%에 대략 26%의 무당파가 이명박, 이회창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 것이다.

이런 얘기를 길게 하는 것은 설사 2012년 선거에서 반한나라당 연합이 성사가 된다고 하더라도, 그래서 한나라당과 반한나라당이 1대 1로 붙어도 야권이 승리하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걸 얘기하고 싶어서다. 그런데 마치 이념이든, 정책이든 상관없이 무조건 반한나라당으로 뭉치면 2012년 선거에서 승리할 것처럼 주장하는 것을 보면 참 답답하다.

'묻지마' 식 통합? 미션 임파서블!

최태욱 : '100만 민란 프로젝트', '빅 텐트' 이런 주장의 핵심은 진보·개혁 세력의 단일 야당을 만들자는 얘기인데, 나 역시 부정적이다. 우선 비현실적이다. 내가 진보신당 당원이라면 이런 흐름에 당연히 반대할 것이다. 진보신당이 바라는 세상이 있고, 비록 소수지만 지지층도 있고, 비례대표제를 통해서 살아남을 수 있는데, 왜 민주당과 같이 해야 하나?

또 이런 주장은 바람직하지 않다. 나는 거대 여당-거대 야당 이런 양당제는 좋지 않은 정당 제도라고 여긴다. 아까 민주당 얘기를 하면서 잠깐 언급했듯이, 이런 양당제 하에서는 한 정당이 굉장히 많은 계층을 대변하기 때문이다. 사실상 어떤 계층도 잘 대변하지 못하는 일이 생기는 것이다.

더구나 현실적으로 우리나라는 1987년 이후로 다당제 아니었나? 또 2004년 이후에는 비례대표제를 통해서 다당제 구조가 가능하도록 제도가 뒷받침하고 있고. 즉 현실적으로도, 이상적으로도 다당제로 가는 것이 맞다. 다양한 계층을 여러 정당이 대변하는 모습. 당장 이명박 정부가 마음에 안 드니까, 단일 야당 얘기가 나오는 건 알겠는데 좋은 해법은 아니다.

그리고 설사 기적적으로 이런 단일 야당이 만들어진다고 하더라도 100% 깨진다. 이념으로 뭉친 것도 아니고, 정책에 대한 공감대가 확실히 뒷받침하는 것도 아니고. 차라리 각 정당이 자기들이 지지 기반을 대표하면서 선거 연합, 정책 연합, 제도 연합을 하면서 연대를 하는 게 오히려 더 현실적이다.

나는 이런 연대의 구심점으로서 두 가지를 제안하고 싶다. 첫째 복지 국가. 둘째 선거 제도 개혁. 즉 국회의원의 50% 정도를 비례대표에 할당하는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해서 함께 노력하는 것이다. 이른바 '복지 국가+PR(proportional representation)' 연합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둘을 전면에 내걸고 연대해서 권력을 확보하고, 이들의 실현을 위해서 노력하는….

프레시안 : 지난 6·2 지방 선거에서는 경기도 고양에서 민주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이 연대를 한 '무지개 연합'의 사례와 같은 긍정적인 얘기가 있었다. 그래서 조국 교수도 올리브 연대 이런 얘기를 한 것이고….

박성민 : 지방 선거와 총선, 대선은 비교 대상이 아니다. 한 번 물어보자? 지금의 선거 제도 하에서 총선에서 어떤 연합이 가능할까? 지방 선거에서는 시장은 민주당, 구청장은 민주노동당·진보신당·국민참여당 이런 식의 나눠먹기가 가능했다. 그러나 총선에서는 이런 일이 굉장히 어렵다.

민주노동당, 진보신당의 노회찬, 심상정, 이정희 씨의 당선을 위해서 민주당이 관악구와 같은 곳에서 후보를 내는 것을 포기할 수 있을까? 당 지도부의 힘이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셌던 DJP(김대중+김종필) 연합 정부 때도 선거(1998년 6월 지방 선거, 2000년 4월 총선)에서 공동 후보를 낼 수 없었는데?

더구나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국민참여당 입장에서도 아무런 명분도 실익도 없이 민주당 들러리를 서려고 하겠나? 국민참여당만 살펴보자. 이 당은 2012년에 총선, 대선을 처음 치르는데 그냥 자기 깃발 들고 가는 게 훨씬 더 유리하다. 왜? 민주당과 같이 해서 얻을 이익이 하나도 없으니까.

우선 민주당 대표보다 더 지지도가 높은 대선 후보(유시민)가 있다. 국민참여당과 유시민 씨의 경우에는 민주당의 호남 기득권 세력과 싸우다 본선에도 못 나갈 위험을 감수하기보다는 민주당과 따로 가다가 막판에 후보 단일화와 같은 '딜(deal)'을 시도하는 게 훨씬 더 유리하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또 국민참여당은 민주노동당이 지난 2004년 총선에서 13%의 표를 얻어서 8석의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당선시킨 것을 보았다.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심지어 민주당 후보보다 인지도가 높은 노무현 정부 때의 장관, 수석 들이 대거 수도권에서 출마해서 당을 알린다면, 국민참여당이 2004년 때 민주노동당이 얻은 혹은 이상의 표를 얻을 가능성도 있다.

이렇게 모든 면에서 따로 가는 게 유리한데 왜 굳이 민주당과 연대를 하겠나? 민주당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민주당에는 2012년 총선도 이번 6·2 지방 선거와 같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강남, 용산, 분당 같은 곳은 한나라당이 가져가겠지만, 도봉, 노원과 같은 곳은 민주당이 재탈환하리라고 보는 것이다. 6·2 지방 선거가 가져다준 착각인데….

이뿐만이 아니다. 민주노동당, 진보신당과 같은 진보정당의 약진, 국민참여당과 같은 자유주의 정당의 출현 등 반한나라당 세력은 계속 분화하는 중이고 그것을 거스르기는 쉽지 않다. 이렇게 여러 가지 상황을 염두에 두면 2012년 총선, 대선에서의 연대는 1987년의 김대중, 김영삼의 후보 단일화만큼이나 어려운 얘기다.

그런데 마치 몇 사람만 결단을 하면 이런 연대가 가능한 것처럼, 또 그렇게 연대만 하면 한나라당을 이길 수 있는 것처럼 얘기하는 것은 현실성이 없다. 방금 최태욱 교수가 잠시 제도 개혁 얘기를 했는데 비례대표제의 도입, 대선에서의 결선투표제의 도입 등과 같은 선거 제도를 바꾸는 것을 통해서 '90년 체제'를 깨는 게 우선이지, '묻지 마' 식의 통합, 연대를 얘기하는 것은 현실적이지도, 바람직하지도 않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선거 제도 개혁, 최우선 과제다!

프레시안 : 그런 비례대표제 도입, 결선투표제 도입과 같은 제도 개혁의 주도권을 누가 쥘 수 있을까? 한나라당이든, 민주당이든 주류는 나서지 않을 것 같은데….

박성민 : 이명박 대통령이 선거 제도 개혁, 개헌 등의 얘기를 던지는데도 아무도 관심이 없는 게 참 답답하다. 민주당에서는 정략적인 발상이라고 무시로 일관하는데, 정치 활동 중에서 정략적이지 않은 게 어디 있나? 서로 주고받으면서 이상적이지는 않더라도 현실적인 방안을 찾아가는 게 바로 정치 아닌가?

최태욱 : 동의한다. 선거 제도 개혁, 개헌 등의 얘기를 이 대통령이 제기했을 때 민주당이 적극적으로 받았어야 했다. 아까 한나라당이 복지에 관심을 가지는 것도 쌍수를 들고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얘기했다. 마찬가지다. 이명박 정부, 한나라당이 비례대표제 도입과 같은 선거 제도 얘기를 하면 민주당이 그 기회를 활용해야 한다.

박성민 : 아마도 이명박 정부, 한나라당이 비례대표제 도입을 얘기하면 일본의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고집할 가능성이 크다. 일본의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석패율 제도'가 특징인데, 이것은 일본 정당의 계파 보스가 지역에서 재선될 수 있도록 안전판의 역할을 하는 제도다. 가장 이상적으로 꼽히는 독일식 비례대표제와 비교하면 한계가 명백하다.

(석패율은 당선자와 낙선자의 득표 비율이다. 비례대표제에서 한 후보자가 지역구와 비례대표로 동시에 출마하는 것을 허용하고, 가장 높은 득표율로 낙선한 후보를 다시 비례대표로 뽑는 것이 석폐율 제도다. 일본에서 1996년부터 실시해오고 있는데, 지역구 선거에서 아깝게 떨어진 후보를 구제해주자는 게 기본 취지다. <편집자>)

하지만 그럼에도 이런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한나라당, 민주당의 현직 의원에게 호소력이 있다면 해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아무 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과도기적으로 이런 권력별 비례대표제라도 도입하는 게 낫기 때문이다. 2004년에 제도의 힘을 우리 모두 다 보지 않았나?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 없이 어떻게 민주노동당이 어떻게 국회의원 8명을 만들어 냈겠나?

이렇게 일단 제도 개혁에 성공하면 분명히 '90년 체제'에 균열이 생긴다. 진보·개혁 세력은 한나라당은 마치 한국 정치의 '상수'처럼 취급한다. 아까도 얘기했지만, 그 상수를 해체하지 않으면 절대로 선거에서 이길 수 없는 상황인데도, 왜 그런지 모르겠다. 한나라당은 단일한 실체가 아니다.

그 안에도 민주당만큼 다양한 목소리가 있는데 TK-PK 연합에 기반을 둔 90년 체제가 깨지지 않으니 이념적 보수, 지역적 영남, 계층적 부자, 연령은 노년에 기반을 둔 '올드 한나라당' 외에 다른 목소리가 나오지 못하는 것이다. 진보 입장에서 보자면, 이 올드 한나라당을 깨는 것이야말로 한국 정치 개혁의 핵심인데….

최태욱 : 진보·개혁 세력이 당장 이명박 정부가 마음에 안 드니까 정치 공학적으로 해결하려고 하면서, 일이 해결될 수 있는 순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것 같다. 선거 제도와 같은 제도 개혁에 집중하면 그 결과 지금과는 전혀 다른 판이 펼쳐질 수 있는데,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은 일에 매달리는 꼴이다.

이대로 가다간 북한은 중국의 식민지

정태인 : 전 세계가 칭송하는 핀란드의 교육 정책은 1968년에 가장 극우를 제외한 좌우의 정당이 모여서 합의한 것이다. 복지 정책이든 교육 정책이든 이런 정책의 일관성을 보장할 수 있는 합의의 틀을 제도적으로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런 제도가 마련되어 있지 않으니 정권이 바뀌면 전 정부가 해놓았던 것을 모조리 부정하는 식이다.

그런 점에서도 지금처럼 한나라당과 반한나라당이 대립하는 정치 지형은 바람직하지 않다. 노무현 정부를 봐라. 상대 정치 세력의 동의를 얻지 못하니, 5년 내내 방어만 하다가 정권을 내놓지 않았나. 대통령의 자질, 정당의 비전 다 중요하지만 정책의 연속성을 보장하는 상대방을 인정하는 정치 지형의 정착이 시급하다.

프레시안 : 사실 정권이 바뀌면서 가장 확 바뀐 게 대북 정책이다. 최근의 북한의 우라늄 농축, 연평도 포격이 갑작스럽게 바뀐 대북 정책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남북 관계가 한국의 정치 현실에 어떤 영향을 줄까?

박성민 : 사실 알 수가 없다. 우리 국민에게 남북 관계에 대해서 이중성이 있다. 예를 들자면, 북한이 조롱거리가 될 때, 그러니까 3대 세습 같은 논란이 불거지면 당연히 한나라당에 유리하다. 그런데 연평도 포격과 같은 일에 북한 폭격과 같은 자칫하면 전면전으로 이어질 수 있는 강경 대응을 하는 것에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가질까? 과연 찬성할까?

그런 점에서 이번 연평도 포격을 둘러싼 민주당의 대응이 참 답답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확전 자제' 발언을 놓고 물고 늘어졌는데…. 민주당은 오히려 그 발언을 잘 했다고 해야 일관성이 있는 것 아닌가? 평화를 지향하는 정당이라면서 확전 자제 발언에 토를 다는 건 일관성이 없는 것 아닌가?

정태인 : 일단 이명박 정부가 이런 상태를 방치하면 북한은 중국에 넘어가는 것으로 봐야 한다. 장기적으로 미국과 중국이 대립하는 구조가 만들어질 테고, 그 안에서 살아남으려면 북한을 구슬려서 한반도 전체를 중립 지대로 만들어야 하는데…. 이명박 정부가 하는 식이라면 북한은 중국, 남한의 미국 이런 식으로 쪼개져서 그대로 고착화될 가능성이 크다.

보수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착각하는 게 있는데, 북한은 절대로 안 무너진다. 지금 중국을 보라. 전 세계의 돈이 중국으로 모이고 있다. 이런 중국 입장에서는 엄청난 투자를 하는 동북 3성의 발전을 위해서 북한이 안정적으로 그 경제권에 편입되는 게 좋을 것이다. 북한은 무한한 지원이 가능한 든든한 친구를 옆에 두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한국 사회 주류 중에서 재계도 남북한의 대결 구도가 유지되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정치야, 바보야!

프레시안 : 이제 2012년 총선, 대선이 금방이다.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박성민 : 이명박 정부 들어서 반한나라당, 반이명박, 이런 식의 정치 세력 간의 극단적 대립이 더욱더 두드러졌다. 그러면서 사실상 정치의 기능이 마비된 상태다. 자, 생각해 보자. 이런 상황에서 미소를 짓는 이들이 누구인가? 바로 선출되지 않은 권력들이 뒤에서 시민을 비웃고 있다.

관료, 검찰, 법원 같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삶의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재벌, 주류 언론도 계속 웃으면서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고 있고. 이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국민이 선출한 이들, 즉 정치 세력이 가장 큰 힘을 가져야 하는데 현실은 정반대다. 진보·개혁 세력도 바로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다시 '정치'에 방점을 찍어야 하지 않을까?

최태욱 : 오늘의 얘기를 종합하면 이렇게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제도가 미래다.' 시간이 없다고 미루지 말고 당장 지금부터 시작해서 제도와 그것에 기반을 둔 구조를 바꿔가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아까 정태인 소장이 지적했듯이 아무리 진보·개혁 세력의 정책이 좋아도 그것이 지속될 수 없다면 말짱 헛일 아닌가.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도 두 대통령을 포함해서 많은 진보·개혁 세력이 좋은 뜻을 가지고 권력을 잡았지만, 결국 실패했다. 그렇게 실패한 근본에는 제도와의 부조화가 있다. 복지 국가, 조정 시장, 평화 체제…. 다 좋은 얘기다. 하지만 현재의 정치 제도와 그것에 기반을 둔 구조 속에서는 설사 집권하더라도 제대로 추진할 수도, 또 연속성을 보장할 수도 없다.

이런 제도 개혁의 핵심에 바로 여러 차례 거론됐던 비례대표제와 같은 선거 제도의 개혁이 있다. 비례대표제가 전면적으로 도입될 때,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정당이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다. 또 이들 정당이 정책을 매개로 연대를 한다면 장기적으로 한국에서도 '포괄의 정치', '합의의 정치'를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정태인 : 여러 번 강조했듯이 이번의 금융 위기는 경제를 운영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성장은 시장에 맡고, 분배는 정부가 하자' 이런 접근으로는 안 된다. 그렇다면,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대안적인 경제의 틀은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그것에 기반을 둔 연대가 필요하다.

2010/12/07 00:21 2010/12/07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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