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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29 01:47, 일단작품세계_Photo
12월 21일. 오사카 인권박물관("리버티 오사카"라는 닉네임으로 더 유명한) 에 다녀왔다.
이건 인권 박물관 링크 http://www.liberty.or.jp/

평화박물관 발표 끝나고, 강같은 평화(진짜 발표 끝나고 며칠은 그랬다)를 즐기며
교토 근교를 돌아다니는 코스 중 당연히 오사카를 넣었고,
그래서 미쳐 못 간 리버티 오사카에 방문.

고베에 갈 때 탄 한큐를 타고 가니 채 5백엔이 안되게, 채 1시간이 안되서어 오사카 도착.
약속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해서 JR 오사카 역을 투어. 오사카는 이번에 세번째인데, 도시가 커서 그런지 늘 어색하다.









유창한 일본어로, 나는 한국사람이다. 오사카 지도를 갖고 싶다. 그랬더니... 중국어로 된 지도를 주었다.
나 진짜 충격먹었다. 결국 영어지도로 바꾸었다.





비가 오려나... 결국 저녁에 왔는데. 그래서 내내 좀 흐렸다.





누가 똑딱이 디카를 넣어놓은 줄 았았다. 작동중.





근처를 걷다가, 엄청 큰 책방이 있기에 좀 돌아다녔는데. 인문사회1위. 샌들. 이게 뭐냐.ㅠ
결국 왜 한국에서 '정의'가 인기인가가 아니라
왜 한국과 일본에서, 혹은 동아시아에서 '정의'가 인기인가로 설명틀이 바뀌어야 할 듯.(정의가 아니라 샌들이 핵심일 수도)
한국적 맥락에서 설명을 시도했던 많은 근거들이 설명력이 없다는 것인가?





인권박물관으로. 요즘 다시 집작하는 플랫폼 사진





못 찾을 수 없는. 전철역부터 이어지는 "리버티 오사카" 표지들.





정말 따라만 가면 되는. 규모로 보면 피스 오사카가 더 큰데(여러가지 의미로도 좀 더 주목받고)
전철역부터 따라오라는 표지는 비교도 안되게 차이가 났다.





전철역에서 800m정도 라는데, 이제 200m 남은듯.









도착. 예전 학교 건물을 리모델링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이 옆에는 리버티 홀 이라는 큰 공연장(행사장)도 있다.





이 분은 이날 오사카 여행을 함께해주신, 선영씨.
독일 본 대학 석사과정에 있다가, 지금은 잠깐 교토대 교환학생으로 와 계신.
준비하는 논문에 재일조선인 관련 내용이 주된 하나의 축이라 오사카 리버티의 재일조선인 자료가 궁금했다고.
식사자리에서 내가 여기 간다고 말하자, 같이 가기로 결정. 역시 사진은 이렇게 명패 옆에서지요.









역시 되는 놈은 되는건가. 딱 같는데 오키나와에서 방문하지 못했던 히메유리 특별전이!
물론 오키나와에서 보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겠지만, 완전 덤으로 대략의 전시자료도 보고, 심지어 히메유리 도록도 샀다는.





일본 사회 내에서 "전쟁"의 명칭이 참 다양한데. 오사카, 리츠메이칸 평화박물관은 15년 전쟁이라는 표현을 쓴다.
그러나 보다 진보적인 그룹에서는 이 명칭을 비판하며, 아시아-태평양 전쟁이라 명명해야 함을 주장하고 있다.
1931년 만주사변부터 시작되는 15년 전쟁. 전쟁을 연속체로서 접근한다는 긍정성에도 불구하고. 조선-대만 식민지,
청일전쟁, 러일전쟁의 역사는 품지 못하는 용어이기 때문이다.
또한 류큐병합 등의 문제까지 논의된다면 더욱 복잡해진다. 관련된 이야기를 풀자면 책이 하나지만,

암튼 이 판낼이 재미있는 것은, 명칭은 아시아-태평양 전쟁이지만, 내용은 정확히 15년 전쟁의 프레임을 따르고 있다.
15년 전쟁 프레임도 각양각색이지만.





저 익숙한 용어를 저렇게 대문짝만한 한문으로 접하니.









철의 폭풍이라 불렸던, 오키나와 상륙 직전 수일간의 포격. 이것저것 쓰고 싶지만
사진 포스팅에 너무 오버하는 것도 아니다 싶어서. 참기로.





히메유리 특별전은 크게 3개의 흐름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첫번째는 아시아-태평양 전쟁의 과정과 오끼나와전의 내용
그리고 그 속에서 진행되었던 군사화(특히 히메유리다 보니, 학교군사동원에 초점이 맞춰서)의 흐름을 하나 짚고.

두번째는 당시 오키나와전투 당시 여고생으로 구성된 간호부대인 '히메유리' 에 속했던 이들 개개인에 초점을 맞춰서
그 흐름을 집는. 이 방식속에서는 여고생들의 당시 생활, 병원에서의 모습, 오키나와전이 극단으로 치달아갔을 때의
상황들이 드러나있다. 이 사진은 이 맥락이 시작되는 패널.

세번째는 실제 당시 간호병으로 동원되었던 이들의 증언을 영상과 활자로 보여주는 곳.
(공간적 배치가 이것 구분에 따라 끊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도식적으로 분류를 한다면 이렇다는)





이 사진은 "생존자"들의 지금.

오끼나와전의 주된 상징일 뿐만 아니라, 일본인에게 전후 중요한 전쟁기억의 요소였던 '히메유리'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는 다양한 층위에서 분석되어야하겠지만. 내 포지션은 히메유리 기억이 가진 "무고한 전쟁 희생자"의 담론이 보수적 전쟁기억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일단 이 포스트에서 관련된 고민을 하나만 정리해보면
동경대 학도병들과의 비교 속에서 전후 히메유리의 재현이 가진 위치와 역할이 조금 더 명확하지지 않을까 하는 것.

전후 일본사회에서 동경대 학도병들의 수기를 담은 "와다쯔미의 소리를 들어라"라는
일본인들에게 하나의 '숨통'과도 같은 것이었다.
이 책에 담긴, 그들이 전장에서 쓴 글들에는 전쟁에 대한 회의, 군부에 대한 비판, 속았다라는 성토 등이 담겨있었다.

전쟁에 패하고, 미군정 시작되었던 시기. 누가 무엇을 책임져야 하는가를 자문했을 그 시기,
이들도, 이렇게 속아서 갔구나. 대학진학율 10% 미만의 시기, 그 중에서도 일본 최고 엘리트들도 이렇게 속았다면.
그들도 속아서 군인이 되었다면. 그럼 '나'는, 평범한 '우리'들의 책임은 조금 가벼워져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해보 되지 않을까?

얼굴 하얀 책상머리 엘리트들이 전쟁에 끌려간 그 장면, 그 시간, 그 기록의 색깔은
전후 일본인들을 불편하게 하지 않았고, 안타까운 '희생자'로서 반전평화의 상징이 될 수 있다.

히메유리는 어떤가? '순결한 여고생'으로 상징되는 "무고한 주체"들의 전쟁동원.
총을 든 군대와 군인이 아닌, 여고생 간호부대인 '히메유리' 는 그 어느 일본들이라도 가슴 짠하게 마음것 동정하고 슬퍼할 수 있는 그래서 불편하지 않고, 불안하지 않을 수 있는 기억의 대상은 아니었을까?

'엘리트' 동경대생들의 학도병 수기. '순결한' 여고생 간호부대원들의 기억. 다른 맥락이지만 매우 비슷한 위치.

실제 '와다쯔미의 소리를 들어라'라는 수기는 일정한 겸열과 편집을 통해서 만들어졌음은 나중에 밝혀졌다. 즉, 학도병의 수기 중에는 "대동아공영권"을 실현해야 하다는 내용도 존재했다. 그러나 이 내용은 '전후에 맞지 않다'는 이유로 수기집에 실릴 수 없었다. 뿐만일까? 보수적 전쟁기억의 주된 방식은, 전쟁은 분명 상호적 현상임에도 늘 모노로그의 방식을 취한다는 것이다. 수기집 역시 그렇다. 길고 가는 손가락의 동경대생들은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을까? 그들의 가슴에 붙은 히노마루를 앞에서 죽어간 이들의 기억은 수기집에 없다.

히메유리 역시 총동원의 억압적 체제 속에서 간호부대로 끌려간 학생. 그것도 어린 여성이란 특징이 강조되지만, 이 상투적인 강조가 가리는 맥락이 분명 존재할 것이다. 차근차근 살펴봐야겠지만 말이다. 아 이거 또 흥분했네.

각각의 구체적인 자료들을 충분히 모으고 비교한다면, 의미있는 연구논문이 될 수도 있을 듯 하긴 하지만,
내가 할 자신은 없기에, 이렇게 쿨하게 포스트에 공개.ㅠㅠ





이제 인권박물관 상설전시관으로. 시작은 인권, 권리에 대한. 권리의 발전을 담은 패널로.
1세대, 2세대, 3세대. 카렐 바삭의 '인권세대론'을 따른 도식이라 보이는데,
이렇게 그림으로 보니, 그 세대개념 도식이 가진 문제점이 너무 극명하게 들어나는 것 같아서 좀 민망.

또한 마지막 3세대 인권의 제목은 "국제인권과 새로운 권리"인데, 3세대 인권이야 붙이기 나름이니
이름이야 그렇다고 치고, 내가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평화권이 빠져있어서 살짝 삐짐.





각각의 권리들을 설명하고 있는데. 이거 너무 내용이 많고 산만하다. PPT 유인물 보는 느낌.
왜 이렇게 파이 그래프는 많은지.





옆 패널은 저렇게 빡빡하게 내용을 채우고, 이 패널은 이 공허한 권리의 "나열"
심지어 개별 권리가 결코 수평적이지 않음에도 그냥 깔아놓는 이 자신감.
어떻게 "발전의 권리" 옆에 "일조권"이 있고, 그 밑에 "지적소유권"이 있는거야.
"권"만 붙으면 다 같은 권리인줄 생각하는 건가 싶은. 그럼 "채권"도 있어야지 하는 심술도.





홈페이지에서 볼 때는 매우 흥미로왔던. 나의 가치관과 차별. 그러나 전시방식이 너무 실망스러웠다.
텍스트만 놓고 보면, "아름다워지고 싶다", "좋은 학교에 가고 싶다" 과 같은 나의 욕망, 가치관이
어떤 사회적 맥락에서 만들어졌고, 또 그것이 무엇을 차별하는지 생각해보자. 뭐 이래서. 야, 이거 좋구나 싶었는데.

전시내용은 정말 두서가 없었다.





그래도 나름 좋았던 실제 인권사안별 내용을 담고 있는 3번째 코너.
특히 개별 사안에 대한 사회운동을 풍부하게 전시하고 있었으며, 체험을 시도하는 방식의 전시들이 눈에 띠었다.

물론 너무 많은 것들을 보여주려고 하다보니 나열적인 느낌은 들지만,
이것은 "인권"이라는 이름이 포괄하는 다종다양한 사안의 현재적 모습이자 한계, 혹은 가능성에서 기인한 것이겠지.





재일 코리안 지문날인 거부. 승규씨 생각도 나고. 저 손가락 풍선 전망있다 생각도 나고.
주민등록 받으려면 모두가 지문을 찍어야 하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차별없이 인권침해를 하는지도 느꼈고.








오끼나와. 우치난추. 오끼나와 노래를 들을 수 있어서 한참 들었다.
오끼나와 전통 음악도 우리 국악과 같이 5음계로 되어있어서 우리나라 사람에게 친근하다고 하던데
난 국악이 나한테 친근한지 잘 모르겠어서, 선뜻 그 설명에 동의할 수는 없지만... 오끼나와 노래가 좋은 것은 사실.









상당히 익숙한. 사진. 슬로건.





부락민 차별지역. 그곳에서 전통적으로 만들어온 피혁제품들.

실제 자료로 쓰기 위해 각각의 코너들을 많이 찍었지만
블로그에 모두 공개할 이유는 없는 듯 해서 일단 인권박물관 포스트는 여기까지.
2010/12/29 01:47 2010/12/29 0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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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옥 | 2010/12/29 08:58 | PERMALINK | EDIT/DEL | REPLY
세상에. 히메유리 특별전이라니ㅠㅠ 아무래도 난 오키나와는 다시 가봐야겠다-
재성 | 2010/12/31 05:22 | PERMALINK | EDIT/DEL
그러게. 나도 보고 얼마나 놀랬는지. 히메유리 도록은 진짜 아무 망설임 없이 샀다야.
혜연 | 2016/01/21 21:13 | PERMALINK | EDIT/DEL | REPLY
오.. 가보고싶어요 ㅎ 오사카역에서 몆분정도걸리나요?
혜연 | 2016/01/21 21:22 | PERMALINK | EDIT/DEL | REPLY
오사카역에서 걸어가신거에용?ㅎㅎ
재성 | 2016/01/25 19:26 | PERMALINK | EDIT/DEL
네, 글에도 나와있는데 1km 안쪽이었던 것 같아요. 표시판도 끔직해서 찾아가시는 것에는 문제가 없을 듯 하네요. 링크 달았어요^^; http://www.osaka-info.jp/kr/facilities/cat/343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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