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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14 21:15, 마음의병_Di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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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속에서 김진숙의 이름 뒤에는 "지도위원"이란 명칭이 붙어있다.
내가 김진숙이라는 사람을 처음 본 것은 위의 동영상을 통해서였기 때문이다.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

이 동영상을 학생회관 어느 방에서 보고 꺼이꺼이 울었다.
당시 사람들을 만나면 이 동영상을 보았냐고, 나도 울었다고 하는 이야기가 일상이었다.
2003년, 노무현 정권시절이었다.
저 영상 하나였지만, 난 "김진숙 지도위원"을 잊을 수 없었고, 이후 그녀가 등장하는 매체는 꼭 귀 기울였다.

김진숙의 "소금꽃나무"라는 책을 산 것은 2010년 헌책방에서였다.
2007년 나온 책을 그 때서야 샀다는 것이 죄송스럽지만,
헌책방에서 이 책을 보자 일말의 고민도 없이 잡았다. 그리고는 읽었다.

당시는 내가 책이란 것을 하나 쓴답시고 새벽까지 몇 줄 쓰지도 못하고 끙끙거리고 있을 때였다. 2010년 초여름.
"책을 내며"를 읽고나서는 가슴이 저렸다. 나같은게 책을 낸다고 이러고 있는게 부끄러웠다.
그리고 그녀가 한 줄 한 줄 눈물과 피로 쓴 글 때문에, 그 무게 때문에 힘들었다.

김진숙, 책을 내며 중

나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아니다.
중학교 때 일기장에 칼을 그리고 선생한테 얻어맞은 뒤로
일기조차 진실을 은폐한 관제 일기만 썼고
글 쓰는 걸 취미로 삼아 본 적도 없다.
원고지 쓰는 법이 이렇고,
편지를 쓸 때는 상대방의 안부를 먼저 묻고,
그날의 기후를 쓰고 어쩌고 하는 '쓰잘데기' 없는 지식이
내가 배운 작문 교육의 전부다.
그런 내가 지금껏 썼던 글들은 원고지에 쓸 수가 없는 글이었다.

한진중공업에서 해고된 뒤 난 철저히 격리되었고
가슴속에선 비등점을 넘어선 뭔가가 늘 들끓어 넘쳐흘렀다.
글을 쓰고 싶었던 게 아니라 말을 하고 싶었다.
억울하다고, 이럴 수는 없는 거라고, 난 빨갱이가 아니라고......
회사 앞에 나타나는 순간 우악스러운 손들이 내 입을 틀어막았고 내가 가장 번번히 출입하던 곳은 유치장이었다.
그때 현장에 있는 아저씨들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유인물이었다.
밤새 쓰고 가리방 긁어 등사기로 밀고
동이 미처 트지도 않은 새벽에 한진 아저씨들이 모여 사는 영도 산복도로
기울어 가는 집집마다 그 유인물을 끼워 놓는 일이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그렇게나마 할 수 없었다면 아마도 난 살 수 없었을 것이다.

...

그럼에도 단 하루도 세상의 주인이 될 수 없었던 노동자들.
그들이 세상의 주인이 되기까지 싸우고, 쫓기고, 잡혀가고,
쫓겨나고, 그리고 죽어 가는 일들이 일상처럼 이어질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싸우고 있고, 오늘도 사무실 앞엔 빈소가 차려져 있다.
그들의 한 맺히고 처절한 이야기를 만인이 공감할 수 있는 언어로 풀어낼 능력이 모자란다는 게
부끄럽고 죄송스러울 뿐이다.


후마니타스라는, 좀체 와 닿지 않는 이름의 출판사에서 연락을 받았을때, 처음엔 가당찮은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따위 걸 책이랍시고 만드느라 잘려 나갈 나무가 아까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한 가지 욕심과 끝내 타협했다. 성찰할 때가 되지 않았나......

김진숙, 소금꽃나무, 후마니타스, pp. 7~10

그녀가 집회에서 한 발언, 몰래 만든 유인물에서의 글, 그리고 한진중공업 해직자로서의 투쟁을 담은 기록들.
그렇게 책을 다 읽었고, 이제는 지도위원으로, 동영상 속 김주익 열사의 조사를 낭독하는 김진숙이 아니라
김진숙이란 사람 그 자체에 대해서 조금 더 다가갈 수 있었고, 또 기억할 수 있었다.

지금 그 사람이 35m 높이의 85호 크레인에 올라가 2월 14일 현재 40일째 고공농성 중이다.
85호 크레인은 2003년 김주익 열사가 129일간 농성을 벌인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곳이다.

40일전 그녀가 올라갔다는 이야기를 뉴스로 들은 다음부터 불안했다.
정작 불안해만하다가, 40일이 갔다. 뭘 할 수 있을까?
결국 자족이고 자위겠지만. 소금꽃나무 중 일부를 옮겨적어본다.

하는 공부가 공부다보니 학살, 전쟁 등에 대한 책을 많이 보는데, 한 학자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죽음과 폭력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그 죽음과 폭력 속에서 생존한 이들의 목소리를 한 줄 한 줄 필사해야한다고.
그런 마음으로, 한 글자 한 글자 더듬어가며 읽고, 기억하고, 느껴야 한다고.

거창할 필요는 없을거 같다. 그저 조금이라도.
40일동안 올라가있는 그 사람이 이 아래에서 만들어졌으면 하는 변화에 천만분에 일 이라도 돕고 싶어서.


김진숙, 항소이유서 중

...
용접이 뭔지도 모르고, 그저 남자들이 하는 일이니 다른 공장보다 돈이 많을 거라는 그 생각뿐이었습니다. 사내 직업훈련소에서 기술을 배우고 용접기능사 자격증을 따고 배치받은 현장은 지옥이 이러랴 싶었습니다. ... 비오는 날 수십 미터 족장 위를 미끌거리며 곡예하듯 홀더를 끌고 작업을 해야 하고, 바람이 몹시 보는 날 바다에 떠 있는 선박 표면을 용접할 때면, 폭 30센티미터짜리 족장 위에 서 있는 것 자체가 묘기였습니다.

마침내 올 것이 오고야 만 듯이 넘어지는 철판에 깔리는 사고를 당하고 그 사고로 지금도 오른쪽 발목이 온전치를 못합니다. 그때 병원에 문병을 오셨던 동료 분들이 그러시더군요. "기름밥 묵기가 쉬분 줄 아나. 그래야 옳은 땜쟁이가 되는 기다. 3년 넘은 사람 중에 빙신 아닌 사람이 하나또없다."

저도 그렇게 옳은 땜쟁이가 되어 갔고, 그렇게 서러운 기름밥 그릇수가 쌓여 갔습니다. ... 13만원 가량의 기본급으로는 방세 3만 원 내고, 이래저래 한 푼씩 갈라붙이고 나면 작업복 빨아댈 빨랫비누 하나 못 사 쓸 형편인라, 잔업 한 시간이라도 더 하려고 아등바등하고, 철야라도 있는 날이면 제일 먼저 철야 신청을 하면서 나이 드신 분들한데 "딸린 식구도 없는 기 벌써 저래 돈독이 올라가 우짜노." 핀잔을 들어도 그저 칭찬이려니 했습니다.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철판에 코를 박고 그렇게 청춘이 흘러도 잔업 시간이 채워지는 기쁨 하나로 살았습니다.

친구 만나서 마시는 커피 한 잔 값도 목돈이고, 친구들이 놀러 오면 하다못해 새우깡 한 봉지 값이라도 들여야 하는 게 아까워서, 만나는 친구 하나 없이 20대 청춘을 살았습니다.

그렇게 5년을 보내던 해, 노동조합 대의원 선거가 있던 겨울이었습니다. 주변에서 같이 일하시던 아저씨들이 "니는 처자식 멕여 살릴 걱정도 없고, 찍혀 봐야 우리보단 헹펜이 안 낫나. 니가 총대 한번 메 봐라." 하시면서 대의원 출마를 권유하실 때만 해도 귓등으로 들어 넘겼습니다. ... 그때 제가 일하던 배에서 사고가 났습니다. ... 그런데 바람도 많이 불고 몹시 춥고, 그래서 바람막이 하나 없는 바다 위 갑판 작업은 무리였다는 얘기는 하나도 없고 그저 그들이 작성해온 문구는, 사고자가 옷을 너무 많이 껴입어, 행동이 둔해서 추락한 것로 적혀 있고 거기에 지장만 찍으라더군요.

... 가족들이 시신을 회사 문 앞에 갖다 놓고 울부짖어도 그들은 눈도 깜짝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본인 부주의로 인한 실족사하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습니다. 목격자들 다 있는데 어디 와서 생트집이냐고, 죽은 시체 놓고 한 밑천 잡으려 한다고, 고추장에 비벼 놓은 퉁퉁 불은 라면처럼 쏟아져 나와 뒹굴던 그분의 깨진 뇌수가 며칠을 눈앞에 어른거려 라면 봉지만 봐도 토악질이 났습니다.

보상이라도 제대로 받게 해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어린애들 학교라도 마치게 하는 게 그분 마지막 소원을 지켜 드리는 일 같았습니다. ... 그렇게 해서 대의원에 출마했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투표가 끝나고 대의원에 당선되어 대의원대회에 참석하니 전부 완장(관리자들) 인색이었습니다. 몇 번을 손을 들어도 발언 기회가 주어지지도 않고 일사천리였습니다. 회의가 끝나자 일제히 송도횟집으로 모셔져 진탕 먹고 간부하는 사람들은 어디서 데려왔는지 색시들과 쌍쌍이 춤판이 벌어지고......

...노동조합 예산 결산 보고서는 그야말로 코미디 각본이었습니다. 멀쩡히 살아 계신 저희 아버지도 돌아가신 걸로 되어 상조비가 지출되어있고 ... 조합원 3000명을 26년 동안 그렇게 우롱해 온 것입니다. ... 그런 사실들이 하나하나 폭로되고, 저에게 부서 이동이라는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영도 공장에서 버스로 한 시간도 넘게 걸리는 우암동에 있는 직업훈련소로 가라더군요. 조합원들은 영도에 있는데 우암동 직업훈련소로 발령내 건 노조활동 탄압이라고 거부하다가 명령불복종으로 해고되었습니다. 86년 7월 전두환 군사 정권 시절의 일이었죠.

... 87년 7월 14일 해고 통지서를 받아 들었을 때 그냥 다, 전부 다, 쏴아 빠져나가는 느낌. 모든 게 와르르 소리 내며 무너지는 느낌. 하늘이 무너지면 그럴까요. 습관처럼 회사로 갔습니다. 매일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 6시 30분이면 출근 타각을 찍었던 오랜된 습관 그래로 회사엘 갔습니다. 막더군요. 노조 간부들이랑, 관리자들이랑, 경비 아저씨들이랑. 넌 이제 이 회사 사람이 아니라며. 그땐 그 말이 그렇게 가슴에 사무칠 수가 없었어요. 넌 이 회사 사람이 아니란 말.

철조망이 쳐진 담장 안 저곳에 내 꿈이 있고 내 청춘이 고스란히 있는데...... 난 저길 들어가야 한다고, 제발 좀 들어가게 해 달라고, 아스팔트 바닥에 내동댕이 쳐지면서도 또 쫓아가 매달리고, 윗도리 단추가 다 떨어지고 바지 지퍼가 다 뜯어져도, 눈물 콧물 범벅이 된 채 발버둥 치며 울부짖었습니다. 세상에서 할 줄 하는 일이란 그것밖에 없고, 그 일을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 이튿날부턴 닭장차까지 와서 막더군요. 그러고는 매일 영도 경찰서로 실려 갔습비다. 도로교통법 위반이라더군요. 그래도 갔어요. 아무 데도 갈 데가 없었거든요. 맞아 죽더라고, 도로교통법을 자꾸만 위반해서 사형을 당하더라고 거기밖엔 갈 데가 없었거든요.

김진숙, 소금꽃나무, 후마니타스, pp. 257~265

지금 김진숙은, 또 자기 같은 사람을, 갈 곳이 공장밖에 없어서 또 그 문 앞에서 통곡할 사람을 만들지 않으려고 올라갔다.
한진중공업 사측은 오늘(14일) 정리해고와 함께 영도조선소, 다대포조선소, 울산조선소에 대해 직장폐쇄를 단행했다.
그리고 2명은 사람이 오늘 새벽 5시 또 다른 타워 크레인에 올라갔다.

김진숙의 항소이유서는 이렇게 끝이 난다. 16년 전의 결말이지만 여전히 사뭇친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만 더 드릴게요. 법이 곧 정의였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같이 가진 것 없고 배운 것 없는 사람들이 배가 등가죽에 붙어 가면서 정의를 소리 높여 외치지 않더라고 그저 법이 정의이기만 하다면. 그렇다면 ......

1995년 11월 27일
2011/02/14 21:15 2011/02/14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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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요 | 2011/02/14 23:50 | PERMALINK | EDIT/DEL | REPLY
발렌타인데이에 이거 보고 눈물 콧물 한바가지 쏟고 갑니다. 되려 힘을 얻는 그 재치있는 트윗을 볼 수가 없어서, 조금, 안부가 궁금해요.
재성 | 2011/02/15 02:47 | PERMALINK | EDIT/DEL
근데 혹시요. 우리가 아는 사이는 아니죠? 문득... 아는 사람같다 느낌이...
마요 | 2011/02/15 22:29 | PERMALINK | EDIT/DEL
:) 아니에요.
제가 너무 흠모해서 쥐 풀방구리 드나들듯 한 데다가, 일본에 있어 사람 붙잡고 얘기할 일이 별로 없다보니,
막 모르는 사람인데 자꾸 친한 것처럼 말걸고 그래서 그렇게 느끼시는 모양이어요.
모르는 사이입니다.
재성 | 2011/02/15 22:41 | PERMALINK | EDIT/DEL
아니 또 이런... 겸양의 표현을 마구 남발하시면 제가... 왠지 아는 사람 누구랑 같다- 이런 생각이 잠깐 들어서요. 오늘 일본 교토에서 옆 자리 썼던 일본인 친구가 잠깐 와서 같이 저녁 먹었는데, 매운 것을 전혀 못먹어서, 제가 다 익스피리언스다... 먹어라 했더니 무척 당황해하며 다 먹었다는. 좋은 추억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당장은 좀 힘들었겠지만요. 인생은 때론 그렇게... 지나고 나면 다...
비밀방문자 | 2011/02/16 17:40 | PERMALINK | EDIT/DEL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재성 | 2011/02/16 18:29 | PERMALINK | EDIT/DEL
전설의 사이버! "사이버"가 참 마음에 듭니다. 근데... 명석은 제 친구중에 명석이가 있긴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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