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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16 19:31, 기억력강화_Scrap
정확히 이 편지를 쓴 날짜가 책에 표기되어있지 않아서, 그 맥락을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으나,
2007년 이전에 쓰인 글이고,
아이들 지키기 운동을 박근혜가 외치던 때에 그것에 대한 비판의 맥락에서 나온 글이라고 보인다.
김진숙이 자신이 겪었던 학창시절을 서술하는 부분이 너무 절절해서 몇 몇 부분을 옮겨본다.
물론 모든 저작권은 김진숙과 후마니타스에 있으므로, 책들 꼭 사서 보시길.



박근혜에게 보내는 편지

...
근혜 씨 아버지 시절. 우리는 이 땅에 역사적 사명을 띠고 아침마다 큰소리로 태어나야 했던 일이나, 이불을 뒤집어쓰고 라디오를 듣는 자를 눈 부릅뜨고 색출하러 다녔던 일이나, 토요일마다 모의 간첩이 되어 배회하던 선생을 생포해서 경찰서에 갖다 바쳤던 일이나, 그 일로 표창장을 받았던 일이나, 우린 로봇이나 컴퓨터게임이 없던 시절에도 참 기발하게 놀았소.

그중에서도 위문편지라는 게 있었소. 걸핏하면 위로를 해야 할 만큼 그 무수한 국군장병 아저씨들을 내가 군대로 보낸 것도 아닌데, 그럼에도 어린 내가 추운 날이거나 더운 날이거나 밤이거나 불철주야 나라를 지켜 주시는 그들의 노고에 대한 감사와, 오늘도 또한 내일도 사시사철 불구하고 용맹하게 북한괴뢰도당으로부터 나라를 잘 지켜 주십사는 고무와 오늘밤도 우리 국민들은 아저씨들 덕분에 발 뻗고 잔다는 사생활 보고를 수시로 해야 했소. 숱하게 썼던 위문편지 둥에, 근혜 씨 엄마 돌아가시고 슬픔에 빠진 영식, 영애 분들을 위로해야 한다고 숙제로 내 준 위문편지를 쓴 건 압권일 듯하오.

그 뒤 두 번째 편지요. 평생을 일만 했던 우리 엄마가 입원도 못 하고 돌아가셨을 때는 근혜 씨로부터 어떤 위로도 받은 적이 없긴 하오만.

박근혜 씨. 진지하게 묻겠소.

쉰도 진즉에 넘어선 나이를 살면서 선거 때 말고, 누군가를 위해 진심으로 눈물을 흘려 본 적이 있으시오? 내가 아는 전교조 선생들은 걸칫하면 우는 못나 빠진 사람들이오.

...
그런 선생들에게 빨갱이에 좌경에 용공에 칠갑을 해서 17년째 "계란이 왔어요. 계란이 왔습니다~." 만큼이나 똑같이 외쳐도 전교조 무너집디까?

그런 선생들이 아이들에겐 가장 존경하는 선생님으로 꼽히고, 그런 조직에 조합원이 줄지 않는다면 방법을 바꿀 때도 되지 않았소? 정상적인 사고를 지닌 사람이라면......

하기야 근혜 씨가 참교육을 어찌 알겠소.

빌어먹게 길기도 하던 국민교육헌장을 아침마다 외어서 한 자 틀릴 때마다 한 대씩 맞아야 했던 기억이 없는 자가 어찌 참교육을 알겠소.

육성회비 가져오기 전에는 학교에 오지 말라는 선생의 명령에 등 떠밀려 학교를 나서면서 운동장이 얼마나 아득하게 넓은지 눈물로 흔들리던 운동장 구석에 막막히 서 본 적이 없는 자가 어찌 참교육을 알겠소.

...

근혜 씨랑 내가 유일하게 공통점이 있다면 우린 둘 다 참스승을 만날 수가 없었다는 거요. 학교마저 병역을 삼았던 근혜 씨 아버지 덕에 공주님 앞에선 선생들마저 설설 기었을 테고, 내가 만난 선생들은 다 근혜 씨 아버지 같은 사람들뿐이었으니까. 그때는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권력 앞에 굴종하지 않는 전교조 선생님들을 존경하오. 근혜 씨 아버지 시절과는 반대의 삶을 사는, 강한 자 앞에서는 더욱 강하고 약한 자와는 함께할 줄 알며 나눌 줄 아는 그분들을 나는 진심으로 존경하오. 129일을 크레인 위에 매달려 있던 노동자가 크레인 위에서 목을 매는 세상에서도, 농민이 전경의 방패에 맞아 죽는 세상에서도, 그래도 내가 희망을 말하게 되는 건, 아이들에게 길가에 핀 민들레를 허리 굽혀 내려가보는 법을 가르치는 그분들이 계시기 때문이오.

우리 아이 지키기 운동을 하신다 했고? 우리 아이들, 부디 진심으로 지켜 주시오. 생존권 때문에 목을 매거나, 제 몸에 불을 붙이거나, 농약을 마시거나, 투신을 하거나, 맞아 죽거나, 그런 기가 막힌 이유들로 어린 아이들이 더는 상주가 되는 일이 없게끔, 그 올망졸망한 상주들과 맞절을 해야 하는 일이 더는 없게끔.

부모가 일하러 나간 빈집에서 불타 죽는 아이들이 없게끔. 혼자 살던 빈집에서 굶주린 개에게 물려 죽는 아이가 더는 없게끔. 그 아홉 살의 아이의 친구가 '영인아, 널 지켜 주지 못해서 미안해.' 편지를 쓰는 일이 없게끔.

먹고 살기 위해 일해야 하는 엄마 대신 애를 맡아 키우던 보모의 남편에게 맞아 죽는 아이가 더는 없게끔. 대물림되는 가난 때문에 실습 나간 공장에서 죽어 나가는 아이가 없게끔. 그리고 '알바'라는 이름 아래 어른들의 먹잇감으로 성적 노리개로 너무나 일찍 체념을 배우는 아이들이 없게끔.

그리하여 지금 당신이 있어야 할 자리는 그 자리가 아니오. 아무도 없는 비닐하우스에 사는 어린 제자에게 수시로 라면을 사 들고 찾아가야했던 건 그 가난한 선생이 아니라 당신이어야 했소. 학교에 오지 않는 아이의 집에 갔다가 개에게 물어뜯겨 죽은 아이를 보고 충격과 자책감에 입원을 해야 했던 것도 그 착한 선생이 아니라 당신이어야 했소.
혼자 아이를 키우기 위해 밤에도 일해야 했던 엄마 대신 세 살짜리 하나를 맡아 키워야 했던 곳도, 자기 새끼들 키우기도 버거워 피폐해졌던 그 보모의 포악한 가족이 아니라 바로 입만 열면 민생을 외치는 당신들의 한나라당이어야 했소.
근혜 씨가 지닌 힘과 돈과 권력을 제대로만 쓴다면 그토록 목청 높여 외치지 않아도 우리 아이들은 저절로 지켜질 거요.
...

김진숙, 소금꽃나무, 후마니타스, 2007, pp. 200~206
2011/02/16 19:31 2011/02/16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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