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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03 01:29, 기억력강화_Scrap
이준규 병역거부 소견서


평화롭지도 평화를 지키지도 못하는 군대
 
제가 어린 꼬마인 시절, 그 때만 해도 TV에선 매주 우정의 무대도 했고 9시뉴스에선 곧잘 무기홍보와 한국군대의 강성함, 북한의 악독함을 이야기하는 프로그램이 많았습니다. 그 때도 지금처럼 정치에 관심 많던 저는 선거나 정당, 정치인, 통일에도 관심이 많았지만 정작 군대가 어떻게 해야한다거나 혹은 군인에 대해 생각한 기억은 전혀 없습니다. 군대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관심을 두지 않고 살던 시절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한국에서 생물학적인 남성으로 태어난 이상 모두가 겪게 되는 문제가 군대였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군대 대해 관심을 갖게 시작된 건 고등학교에 진학할 무렵부터입니다. 군대에 대해 사람들에게 듣는 여러 가지 이야기 중에 좋은 이야기를 듣는 것은 매우 힘들었습니다. 군대에서 겪게 되는 폭행과 폭언, 지극히 권위적이고 비민주적인 내부 생활, 2년간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지내야하는 것에 따르는 괴로움 등 힘들고 어려운 곳이라는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이 흔히 듣는 그런 이야기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이런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들처럼, 가지 않으면 좋지만 가지 않을 수 없고, 또 군대가 우리를 지켜준다고 그 당시엔 저도 어렴풋이 생각했습니다.  

초?중?고등학교 시절, 여느 학생들처럼 하루에도 수십 대에서 많게는 백대가 넘는, 체벌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폭력에 시달려 고통스러웠던 저는 때리는 않는 선생이 되겠다며 교대를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교대에선 복학생과 ROTC를 중심으로 한 남자단합대회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학내에서 남단이라고 불렸던 이것은 남자들끼리 모여 선후배간의 관계를 돈독히 한다는 명목 하에 선배의 권력을 확인받고자 하는 행사였습니다. 행사는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선배들의 일방적인 지시를 수용하기를 요구받고 그렇지 않을 경우에 폭언과 때로는 폭행으로 이어지곤 했습니다.

불행하게도 이런 문화는 남단에만 그치지 않고, 노골화의 수준의 차이는 있었지만 학내문화 전반에 퍼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곧 이것이 학내문화만이 아니라 사회전반의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 중심에 군사주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무렵부터 저에게는 조금씩 다른 생각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시작은 새내기 때 들었던 ‘왜 꼭 통일을 해야 하나?’라는 질문이었습니다. 막연히 통일은 당연히 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해 온 저에게 남북 간의 문제의 핵심은 통일이 아니라 평화라는 걸 처음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평화’라는 단어와 늘 함께인 ‘군대’와 ‘전쟁’에 대한 고민은 제 안에서 조금씩 살을 붙여갔습니다.

학교에서의 군사주의 문화를 통해 군대라는 공간의 폭력성에 주목하는 있던 저는 이라크전쟁을 통해 군대에 대한 스스로의 마지막 질문을 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그전까지만 해도 한국군이 한국의 평화를 위해 방어를 하는 군대라는 생각을 했고, 그것이 존재함으로 평화가 유지되고 있는 게 아닐까하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파병을 통해 한국군이 평화를 목적으로 방어를 하는 군대가 아님을 확인시켜주었고, 미국군의 압도적인 화력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이라크는 평화는커녕 폭력적인 공간으로 변화하는 것을 통해 군사력이 평화를 가져올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전쟁의 끔찍함은 머릿속으로 알고 있었지만 동시대에 벌어지는 관타나모 수용소 사태 등은 전쟁이라는 건 선악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살육의 현장이라는 사실을 더욱 명확히 해주었습니다.


두 가지 경험

저는 2005년 대학에서 수업시간에 교수에게 폭행을 당했습니다. 이유는 자신의 책에 자신이 원하는 펜으로 이름을 적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너무나도 터무니없는 일이었지만 교수는 학교에선 아무런 징계도 받지 않고 검찰에서도 교수의 “체벌”이라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받아들여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습니다.

그 일로 저는 엄청난 분노와 절망에 휩싸였습니다. 거의 3개월 동안 잠에 들지 못하고 혹시라도 잠이 들면 늘 그를 죽이거나 그가 나를 죽이는 꿈만을 꿨습니다. 그리고 한 동안 그를 죽이고 나도 죽는 것이 나의 꿈 이었습니다.

휴학 후 집안사정으로 학교에 돌아가야만 했던 저는 교수들은 비웃음을 날렸고 학생들로부터 사정은 알지도 못한 채 도망자라고 손가락질을 당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끔직한 학교생활에서 곁에 남아있어 준 것은 당시 제 연인이었습니다.

하지만 머지않아 이별을 통보받은 저는 제 곁에 남은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절망감에 그녀의 뺨을 때렸습니다. 곧바로 후회했지만 이미 제 오른팔은 끔찍해져 있었습니다. 오른팔을 떼내어 버리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하는 제가 원망스러웠습니다. 그런 오른팔로 밥을 먹고 이렇게 글을 쓰는 뻔뻔한 저를 보며 폭력적이고 끔직한 나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내 몸은 그런 나를 잊지 말라는 것인지 눈을 감으면 교수에게 폭행을 당했던 왼쪽 뺨과 왼쪽 허벅지는 딱딱한 돌처럼 느껴지고, 폭행을 했던 오른손은 피가 잔뜩 묻은 것처럼 보이게 합니다.

시간이 지나 자연스럽게 피해자로서, 그리고 가해자로서의 저를 보면서 군인으로서의 나를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총을 들고 소위 “적”이라고 불리는 사람에게 총을 겨누고 그 총을 사람을 죽이는 나를 상상해보았습니다. 그 때 내 모습은 어떠한 이유로도 용서할 수 없는 살인이었습니다.

앞서 두 경험은 제 삶을 완전히 바꾸어놓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겪은 두 가지 일은 전쟁에서 겪게 되는 살인에 비하면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아직도 교수의 폭행은 잊을 수도 분노하지 않을 수도 없고, 아직도 끔찍했던 내 손이 만든 붉은 뺨이 생각나는데 전쟁 속에서 내 모습은 상상조차 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벌인 살인으로 인해 그를 아끼고 사랑했을 가족과 친구들이 가질 분노, 매일 같이 온 몸이 피투성이로 보일 제 자신을 말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들에게 용서를 구할 방법이 전혀 없다는 것도, 그런 분노를 만든 나를 용서할 수도 없음을 말입니다.

 
여린 마음

저는 맞는 것이 어릴 때부터 싫었습니다. 어쩌면 그 때문에 덜 맞을 수 있는 모범생이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맞지 않아도 다른 친구들이 맞고 있는 것도 너무 고통스러웠습니다. 중학교 때의 대규모 체벌, 고등학교 때 같은 방을 썼던 친구가 체벌이라는 이름으로 폭행당한 후 검게 변한 엉덩이, 대학시절 남단과 교수 폭행까지 언제나 고통과 상처로 남았습니다.
 
그래서 늘 어떻게 하고 싶었지만 한 것이라곤 중학교 때 떨면서 적었던 학교게시판 글, 남단을 불참하고 썼던 자보, 교수를 고발하는 소극적인 방법밖엔 없었습니다. 아픔에서 벗어나지도 못하고 제대로 맞서지도 못하는 겁 많고 여린 내 마음이 미웠습니다. 

하지만 폭력에 아파하는 친구들을 볼 수 있게 한 것도, 내 폭행 이후에 나의 끔찍함을 발견할 수 있게 한 것도, 그리고 내가 전쟁의 끔찍한 살인자가 되어 그것을 바라보게 한 것도, 도망치기 좋아하고 잘 아픈 여린 제 마음이란 걸 이제는 압니다. 그 마음이 다른 사람이 아플 때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걱정할 수 있게 하는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을 이제는 알게 되었습니다.

군대는 강하기를 요구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군대도 갔다가 왔는데...”라고 하는 건 이런 맥락일 겁니다. 하지만 이런 강함은 약함을 폄하합니다. 그 정도쯤이라고 말입니다.

제가 꿈꾸는 세상은 여리고 약한 사람들이 모여 서로가 다치지 않게 서로 아끼면서 사는 곳입니다. 그리고 저는 사람들이 저처럼 겁 많고 여리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군대도 말입니다. 수개월을 연습하고 그들은 같은 사람이 아니라 적이라고 계속 쇠뇌하고도 전쟁터에선 다른 한명을 죽이지 못해 수만 발을 쏘고, 살아서 돌아와선 살인의 기억을 지우지 못해 힘들어하는 여린 사람들이 있는 곳입니다. 그럼에도 다른 사람들이 공격할까 다른 많은, 더 큰 총을 들어야 할 것 같은 겁 많은 사람들, 저와 같은 여리고 겁많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바라는 것도 저와 같이 더 이상 총 드는 일 없이 평화롭기만을 바라는 것 일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비록 작은 목소리라도, 겁이 나겠지만 평화를 얻으려면 총을 놓아야하지 않겠냐고, 그것이 함께 바라는 게 아니냐고 이야기하려 합니다.

제 여린 마음은 제게 다시 이야기합니다. 도망치라고. 군대에서 도망치라고. 내가 피투성이가 되는 걸 보고 싶지 않다고. 다른 사람에게 약해도 된다고 아픈 건 잘못이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싶다고 말입니다.

2011년 5월 2일 입영일
이준규


***
얼마나 많은 불면의 밤을 보내면서 썼을까. 마음이 아프다. 이 글을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
아래는 이준규씨가 5월 2일 헌법재판소 앞에서 했던 1인 시위 내용


# 입영일에 병역거부를 선언하고 일인시위를 한 이준규씨



준규씨는 대구에 삽니다. 일인시위가 있는 당일, 혹시라도 늦을까봐 새벽같이 일어나 친구와 함께 서울로 왔습니다. 그리고 직접 피켓에 “군대는 강합니다. 저는 약합니다. 총의 강함이 아니라 다른 이의 아픔을 보게 하는 약함이 평화를 가져옴을 압니다. 그래서 저는 강해지지 않겠습니다” 라고 쓰고 헌법재판소 앞에서 일인시위를 시작했습니다.



화창했던 5월의 봄날씨 속에 준규씨는 차분하고 여유로워보였습니다. 비교적 한산한 헌재 앞이지만 그래도 점심을 먹기 위해 사람들이 오가며 준규씨와 피켓을 바라봤습니다. 가까이 와서 피켓 내용을 읽어보기도 하고 이것저것 질문을 하기도 했습니다. 기자가 와서 소견서도 읽고 피켓을 들고 서있는 준규씨와 인터뷰를 하기도 했고요. 준규씨가 일인시위를 하는 한 시간동안 친구들과 지지하는 사람들이 멀리서 지켜보며 준규씨를 응원했습니다. 한시간의 시간동안 피켓을 들며 의외로 지루하거나 심심하지 않았다고, 사람들이 피켓을 읽어주고 바라봐줘서 신기했고 시간이 금방 갔다고 합니다.




***

[참세상] “평화를 가져오는 것은 ‘약함’...나는 강해지지 않겠다”
입영일에 헌재 앞서 일인시위 한 이준규 씨

김도연 기자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61359

...
인터뷰 도중 길을 지나던 한 아주머니는 그가 들고 섰는 피켓을 가리키며 ‘이게 뭐야?’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제가 병역을 거부한다는 말입니다.” “군대 안 가겠다는 거야?” 날 세운 물음에 설명할 말을 찾던 그가 입을 뗐다. “모든 사람들이 평화를 원하잖아요. 그런데 사람들은 평화를 위해서 군대나 총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잖아요. 그런데 제가 생각하기에는 두 명이 싸울 때, 싸우지 않기 위해서는… 누군가 주먹을 쥐지 않아야 하는 거잖아요.” “그건 이론이지!” 아주머니는 그렇게 외치고는 곧장 자리를 떠버렸다.

그는 병역거부를 ‘선언’하는 이 시점에도 그는 여전히 자신의 생각들을 말로 설명하는 것은 어렵다 했다. 하지만 그것 또한 자신의 역할임을 알고 있었다. 때문에 그는 “앞서 여러 병역거부자들이 죽이지 않아도 살 방법이 있다는 것을 나에게 가르쳐주고 또 그런 생각들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를 만들어준 것처럼 나도 남에게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이 병역거부를 함으로써 “나처럼 이렇게 특별한 시민사회단체 경험이 없는 사람도 단지 죽이고 싶지 않다면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래서 어찌할 바 모르다가 상처 입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2011/05/03 01:29 2011/05/03 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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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진 | 2011/05/04 00:04 | PERMALINK | EDIT/DEL | REPLY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읽고 싶어서 앰네스티 대학생네트워크 클럽으로 퍼갑니다^^
원문출처 www.withoutwar.org
색깔/밑줄 강조 출처 dp.pe.kr 로 명시했습니다~
:)
재성 | 2011/05/04 00:32 | PERMALINK | EDIT/DEL
출저까지 밝혀질 정도면... 색깔/밑줄을 훨씬더 현란하게(응?)... 넵넵. 많은 사람들이 읽으면 좋을 글 같아요. 양여사께서 대구에 직접 내려가서 처음 만나뵈었을 때, 아 참 여린 사람이구나 느끼셨다고 하네요. 상처받을 수 있는 마음. 그게 필요한거 같아요.
냉이 | 2011/05/18 22:15 | PERMALINK | EDIT/DEL | REPLY
사람들은 그럽니다.
평화를 지키기 위해 총과 칼, 방패를 들어야 한다고요.
마치 평화를 위해 방패를 들고 총을 겨누는 것이 당연한 섭리인 것 처럼...
그러나 말입니다.
온전한 평화는 평화 그 자체지요.
칼도, 방패도, 총도 필요없는!
그리고 이런 말 하고 싶습니다.
평화를 빌미로 전쟁을 애써 포장하려 하지는 않는지?
나참.. | 2011/05/28 16:01 | PERMALINK | EDIT/DEL | REPLY
아니 도대체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이 평화는..어떻게 얻어지는지 알지 못하는겁니까..?
전쟁을 기념한다고?? 자식 가족 나라를 위해 피흘려 몸바친 이들의 마음을 헤아리지도 못할만큼 생각이 어립니까?
그것이 전쟁자체를 기념하는겁니까? 그 전투를 통해 우리힘으로 얻어낸 우리의..이 지금의 평화를 기념하는거 아닙니까?
죄송한데.....찐따들이 군대가기 싫어서 쇼하는걸로 밖에 안보입니다..화가 나네요. 기피..다 기피하면 누가지킵니까
포탄떨어지고 미사일 날라오고 가족이 피로 물들어야 깨닫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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