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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16 22:54, 보내자원고_Column
[292호] 2013년 04월 15일 (월) 11:53:59


[지슬], 박 일병의 자리에 서기

4·3을 박 일병의 자리에서 기억하는 것은, 5월 광주를 공수부대원의 시선에서 기억하는 것이다.
국가의 이름으로 학살당한 이들을 기억한다면 총을 드는 것을 주저할 수밖에 없다.

임재성 (평화 연구자)
   





영화 <지슬>을 봤다. 감자를 의미하는 제주도 방언인 지슬. 누군가는 앞으로 찐 감자를 먹을 때마다 4·3이 생각날 거 같다고 말했다. 나이 든 어미는 군인에게 죽임을 당하면서도 산속으로 피신한 자식들을 걱정하며 바구니에 든 지슬을 품었다. 어미가 걱정되어 마을로 내려온 자식은 시신을 수습하지도 못한 채 지슬을 들고 산속 동굴로 돌아갔다. 학살을 피해 컴컴한 동굴 속으로 숨어든 사람들은 그 지슬을 나눠먹었다. 자식은 차마 입에 대지 못했다.
 
수많은 이들이 <지슬>을 봐야 한다고 말한다. 역사를 기억해야 한다고 외친다. 물론 더 많은 이들이 이 영화를 봐야 하고, 제주도에서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벌어진 학살을 기억해야 함은 분명하다. 그러나 앞선 ‘말’들은 너무 매끈하다. 타인을 향해 기억하라고 외치면서 자신을 자연스럽게 ‘피해자’ 자리에 놓는다. 과거의 참혹한 고통에 가슴 아파하면서도, 그 고통과 현재의 자신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다.
 
그래서 영화 속 박 일병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스무 살 박 일병은 신참에게 묻는다. 너 사람 죽일 수 있냐고. 여기서는 죄 없는 사람도 죽여야 한다고. 결국 자기 자신이 주민을 쏘지 못한 탓에 얼차려를 당하면서도 박 일병은 다시 묻는다. 이 사람들이 폭도냐고.
 
여전히 적지 않은 권력자들이 4·3은 빨갱이 폭동이었으며, 정당한 진압이었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나라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스스로를 산속으로 피신한 사람이 아니라 박 일병의 자리에 세워야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자리에 서는 순간, “역사를 기억해야 한다”라는 외침 이전에 자기 자신이 사람을 죽일 수 있는지에 대해 답해야 한다.
 
   
 
ⓒ난나 http://www.nannarart.com/sisain.html


가해자의 자리에 선다는 것은 가해자를 옹호함이 아니다. 가해자 대 피해자라는 해묵은 이분법에 갇히는 것 역시 아니다. 4·3을 박 일병의 자리에서 기억하는 것은, 5월 광주를 공수부대원의 자리에서, 용산참사를 경찰특공대의 시선에서 기억하는 것이다. 그 불편한 자리에서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우린 거부할 수 있었을까? 사건의 한복판에서 ‘무장 폭동’ ‘빨갱이’ ‘도심 테러’라는 말에 의심을 품을 수 있었을까? 이 질문은 방아쇠에 걸린 자신의 손가락을 빼기 위해서 지금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로 이어진다.
 

유대인 학살을 이유로 병역을 거부한 독일 청년들
 
징병제가 폐지되기 전까지 독일에서는 병역거부자가 대체복무제를 신청할 때 자신이 왜 병역 거부를 선택하게 되었는지를 써내야 했다. 이 신청서에 빈번하게 등장했던 것이 나치의 유대인 학살이었다. 자기 나라 역사에서 권력의 폭주를 똑똑히 보았고, 그 때문에 총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공동체에 대한 의무를 수행하겠다는 것이었다. 국가의 학살을 반성하며 병역거부권을 헌법에 명문화한 독일은 이들에게 다른 방식의 복무를 허용했다. 독일 사회가 과거를 잊지 않는 방식이었다.  
 
한국에서도 비종교적 신념의 병역거부자들이 제주 4·3이나 광주 5·18과 같은 국가 폭력의 역사를 병역 거부의 이유로 밝히고 있다. 국가의 이름으로 학살당한 이들을 기억한다면 결국 총을 드는 것을 주저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이들의 주저함에 전혀 공감을 표하지 않는다. 네 집에 강도가 들어와도 싸우지 않겠느냐고 비아냥거리면서 감옥으로 몰아넣을 뿐이다. 사실 지금까지 모든 비극은 그 강도를 잡으라는 명령에서 시작되었다. 병역거부자의 주저함이 용인되지 않는 사회는 언제든 다시 폭주할 수 있다. 우리는, 우리 사회는, 과연 박 일병의 자리에서 병역 거부를 택할 수 있을까? 여기에 4·3이 반복되지 않을 가능성이 놓여 있다고 본다.

2013/04/16 22:54 2013/04/16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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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방문자 | 2013/04/16 23:20 | PERMALINK | EDIT/DEL |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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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성 | 2013/04/16 23:26 | PERMALINK | EDIT/DEL
좋은 기회에 그렇게 되었어요. 덕분에 제노 홈페이지에도 놀러가봤네요^^;
먼자리예쁜애 | 2013/04/17 00:15 | PERMALINK | EDIT/DEL | REPLY
우왕우왕 뿌잉뿌잉
비밀방문자 | 2013/04/18 18:37 | PERMALINK | EDIT/DEL |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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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방문자 | 2013/04/21 04:55 | PERMALINK | EDIT/DEL |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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