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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와 회사

우리 사회 진보의 진짜 문제는 대의를 천명하는 공동체만 있을 뿐 원칙을 지키는 회사가 없다는 것이다.
출판사 그린비 사태가 주는 교훈이다.

[300호] 승인 2013.06.20  01:59:07

임재성 (평화 연구자)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16721


진보적 인문·사회과학 책으로 유명한 그린비출판사. 혁명과 탈주를 외치는 책들을 만들어온 이 출판사에 노동조합이 만들어진 지는 아직 1년이 채 안 되었다. 그 노조가 최근 ‘부당징계 철회’와 ‘노조탄압 중지’를 외치며 1인 시위를 이어간다. 진보적 출판사가 노조를 탄압한다? 그렇다면 회사 측의 표리부동함을 비판하면 되는 것일까? 그러나 문제는 단순하지 않다. 지금 그린비의 갈등에 깔려 있는 본질은 ‘진보적인 인문학 공동체’와 ‘노동자의 권리가 보장되는 회사’라는, 대립하지 않을 것 같은 두 지향의 대립이기 때문이다.

그린비출판사는 내부적으로 ‘우리는 회사라기보다 공동체이며, 우리가 책을 만드는 것은 노동이 아닌 운동’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분명 매력적이기도 했다. 노조를 준비했던 그린비 직원들 역시 좋은 책을 만듦으로써 세상을 바꾸는 ‘운동’을 함께한다는 것에 뿌듯해했다. 그러나 바로 그 이유로 당연시되는 초과 노동과 “우리와 지향이 맞지 않는다”라며 회사로부터 배척당하고 때로는 회사를 그만두어야 했던 동료를 보면서 직원들은 노조가 필요함을 절감했다. 2012년 7월, 언론노조 그린비출판사 분회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스스로 진보적이라 자부했던 경영진은 노조가 설립되는 과정에서 자신이 ‘회사 측’이나, ‘자본가’로 규정되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그렇다면 앞으로 회사처럼 해주겠다”라고 선언했다. 모든 직원에게 출퇴근 카드를 찍게 했고, 무노동 무임금을 천명하며 지각 시에는 월급에서 제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전체회의는 폐지되었으며, 매일 편집해야 할 페이지 수를 정하는 방식의 비상식적인 노동 통제도 도입되었다. 경영진이 생각한 회사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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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나 http://www.nannarart.com/sisain.html


그렇게 감정의 골이 깊어가던 2013년 4월, 회사의 설명을 그대로 옮기자면 노조원인 한 직원이 편집상 큰 실수를 저질렀다. 그는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면서도 일방적인 노동 통제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고, 편집장과 언쟁을 벌이기까지 했다. 회사는 업무 과실과 함께 직장 질서를 문란하게 했다며 징계를 결정했다. 이에 노조는 ‘직장질서 문란행위’는 부당한 징계 사유이며, 노조 탄압이라고 맞서고 있는 것이 지금의 상황이다.


비상식적 노동 통제가 회사의 모습?

대안적 출판 공동체를 꿈꾸었던 선배들은 이 공동체를 억압으로 느낀 후배들이 노동자로서 항의의 목소리를 내자 당황했다. 그리고 그 당황스러움은 “이제 회사가 되겠습니다”라는 냉소로 귀결되었다. 괘씸하기도, 서운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이 기회를 통해서 제대로 된 회사, 제대로 된 회사 측이 되어보는 것은 어떨까? 그건 공동체의 붕괴도, 함께 운동하는 동지로서의 관계를 부정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공동체라는 이름 속에서도 존재했던 권력관계를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이다. 동일함을 강요하는 공동체의 배타성을 넘어서 마음에 안 드는 직원들 역시 회사의 주인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함께 하하호호 공부하며 책 만드는 공동체는 아니겠지만, 서로의 욕구와 이해를 드러내며 논쟁하고 싸우며 합의점을 찾아가는 건강한 회사가 될 수는 있을 것이다. 사실 우리 사회 진보의 진짜 문제는 대의를 천명하는 공동체만 있을 뿐 원칙을 지키는 회사가 없다는 것이다. 운동이라는 것, 공동체라는 것은 분명 반짝이는 무엇이다. 그러나 그 속에서 용인되고 강요되었던 것들을 외면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린비에서 인생의 첫 책을 낸 저자로서, 내 책이 그린비에서 나왔음을 늘 자랑스러워하는 저자로서, 간절하게 바란다. 노동자가 주인인 회사가 있다면, 그게 그린비였으면 좋겠다.
2013/06/21 01:57 2013/06/21 0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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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방문자 | 2013/07/19 00:35 | PERMALINK | EDIT/DEL |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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