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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04 00:03, 보내자원고_Column
부치지 못한 편지

대학 시절 짧게 활동을 같이했다. 그녀가 세상을 떠난 후 당황스러웠고 절망스러웠다.
그녀가 남긴 글을 다시 읽으며 곰곰이 생각했다. 좌파로서 살 수 없는 세상에 대하여.
 
임재성 (평화 연구자)
[342호] 승인 2014.04.03  08:51:06
 
 
품위를 지키며 사는 것이라고 했다.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를 말해준다는 아파트 광고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는 이 사회에서, 사는 동네와 아파트 평수로 사람을 줄 세우는 이 천박한 사회에서, 인간으로서 존엄을 지키며 손잡고 함께 살아가는 최선의 방식. 그게 좌파로 사는 것이라고 했다. 대학생 시절 이런 선배들의 말을 들으며 마음이 뜨거워졌다. 책을 읽었다. 부침은 있었지만 그래도 긴 역사 속에서 세상은 진보해 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황현산 교수의 말처럼 누군가에게는 눈앞의 보자기만 한 시간이 ‘현재’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조선 시대에 노비들이 당했던 고통도 ‘현재’이다. 당장의 얇은 시간에 아등바등하지 않고 우리 시대의 고통을 느끼고 또 그것을 줄여나가는 삶을, 그렇게 두터운 현재를 살아가고 싶었다.
 
쉽지 않았다. 세상을 바꾸기는커녕 스스로를 바꾸는 것도 실패하기 일쑤였다. 반면 세상의 시계는 거꾸로만 가는 것 같았다. 그사이 선배들은 역시 사회는 만만치 않다면서, 일단 각자 자리를 잡아보자고 했다. 얼추 자리를 잡은 선배들은 좌파는 낙천적이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탈리아 감옥에서 그람시가 ‘지성의 회의주의와 의지의 낙관주의가 좌파의 자질’이라고 했다며,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그런 것이라 했다. 품위 있는 삶이란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삶이라 믿었는데, 정작 우리에게 필요한 건 낙관주의였나 싶었다. 점점 좌파란 것에 대해 냉소적으로 되어갔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난나</font></div> <a target=
ⓒ난나
http://www.nannarart.com/sisain.html
 
 
그러다 얼마 전, 박은지 노동당 부대표의 소식을 들었다. 대학 시절 짧게 같이 활동한 경험이 전부였지만, 그 시간만으로도 훌륭한 운동가라는 인상을 받기에 충분했다. 이후 진보 정당에 몸담을 그녀의 활동을 늘 기대하며 지켜봤다. 좌파로서 생을 꾸려가는 사람의 모습은 그 자체로 지켜보는 이들을 깨어 있게 했다. 그런데 그녀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당황스러웠고, 절망스러웠다. 품위를 지키며 살아가려고 했던 한 사람이 처절하게 실패하는 순간을 목격한 것 같았다. 매체들은 젊은 여성 정치인의 자살이라는 자극적 소재에 신이 났는지 그녀가 싱글맘이었고, 우울증이 있었으며, 최저임금을 겨우 받고 활동했음을 흩뿌리듯 퍼날랐다. 그녀의 실패는 그래서였을까? 진보 정당의 혹독한 겨울을 견딜 만큼 충분히 낙천적이지 못해서였을까?
 
 
불량한 사회 앞에서 우리는, 우리가 아닌 그녀만을 말한 건 아닐까
 
자살은 사회의 실패다. 타인의 고통에 연민하고, 그래서 가난하고 배제된 이들과 함께 연대하는 삶을 택한 좌파를 기를 수 없는 사회, 품위를 지키며 산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사회가 지금 우리 사회라는 증거다. 이 증거 앞에서도 우리는, 우리가 아닌 그녀만을 이야기하고 있다. 좌파는 낙천적이어야 한다는, 좀 더 견뎠어야 한다는 무책임한 언어를 내뱉고 있다.
 
“돌이켜보면 매년 5·18은 언제나 항쟁을 현재로 살아가는 이들의 저항과 과거의 박제로 남겨두려는 자들의 기념식으로 갈라져 있었다.” 지난해 5·18 당시 진보신당 대변인이었던 박은지의 논평 중 한 구절이다. 단언컨대 이 정도의 문장을 쓸 수 있는 정치인은 많지 않다. 우리는 이런 진보 정치인을 품지 못했다. 그녀가 남긴 글과 인터뷰에는 아들 이야기가 많았다. 총 장난감을 사주지 않는데, 그래서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할까 봐 걱정했단다. 엄마의 원칙 때문에 아이가 상처입을 수도 있으니까. 그래도 딱지치기를 하며 친구들과 잘 어울려서 고마웠단다. 좌파이길, 엄마이길 멈추면서 얼마나 많은 미련이 있었을까? 왜 우리는 그 미련의 끈을 충분히 두껍게 하지 못했을까? 그녀의 죽음 앞에서 이야기되어야 하는 것은 그녀가 아니라 우리다. 좌파로서 살 수 없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 말이다. 
2014/05/04 00:03 2014/05/04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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