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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04 21:47, 보내자원고_Column
대통령도 못 바꾼 군대를 바꾸는 법
 
윤 일병에게만 군대가 지옥이었을까. 억울한 죽음 뒤에 잠깐 외치는 구호로는 군대를 바꿀 수 없다. 
딱 한 가지를 집요하게 요구해야 한다. 바로 독일식 국방감시관이다.
 
임재성 (평화 연구자)
 
 
[363호] 승인 2014.09.03  08:18:12
 
 
“대통령이 와도 보여줄 수 없다.” 2002년 대통령직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녹화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죽어간 대학생들의 진실 규명을 위해 조사를 나갔을 때, 기무사의 답변이었다. 군대라는 존재의 성격을 이보다 더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일화도 없다. 군대사회학에서는 군대의 폐쇄성을 비판하며 ‘국가 속의 국가’라고 표현한다. 근대국가는 삼권분립을 기본으로 상호 견제 속에서 존재하는데, 군대는 자신을 예외로 둔다는 것이다. 기밀을 다룬다며 자신들을 특수화하고 외부의 감시를 배제한다.
 
군대는 본질적으로 위계질서 속에서 폭력 행사를 준비하는 조직이다. 사회로부터 통제가 차단된 채 내부 논리만 증폭된다면, 폭주할 수밖에 없다. 군에 대한 문민 통제가 모든 민주주의 국가에서 최상위급 통치 원칙으로 다루어지는 이유이다. 우리는 이미 폐쇄된 군대에서 어떻게 죽었는지, 누가 죽였는지도 모른 채 돌아온 수많은 시신을 마주해왔다.
 
최근에 와서야 비로소 군대 내 사고가 발생하면 높으신 양반들이 사과를 했고, 대책이 논의되었다. 2005년 논산훈련소 인분 사건과 GP 총기사고 이후 노무현 정부는 강력한 병영 문화 개혁안을 내놓았다. 군 최고통수권자였던 노무현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도 실렸다. 그러나 군의 조직적 반발을 넘어서지 못했다. 몇몇 변화는 있었지만, 군에 대한 외부적 개입을 가능하게 하는 근본적 변화에는 실패한 것이다. 
 
최근 윤 일병 사건 이후 여러 논의가 나오지만 앞선 경험을 반복할 가능성이 크다. 냉정하게 말하면 새로운 대안은 필요 없다. 이미 세금을 들여 검토한, 당장 실현 가능한 대안도 충분히 많다. 문제는 어떻게 군의 반발을 누르고 군대 문을 열 것인가이다. 내용이 아니라 방법이 핵심이다. 
 
딱 하나를 집요하게 요구해야 한다. 그래야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있다. 독일식 국방감시관(<시사IN> 제362호 ‘독일식 옴부즈맨 군 인권을 부탁해’ 참조)이다. “또 다른 윤 일병이 나오지 않으려면 독립적인 국방감시관 제도가 만들어져야 한다”라는 데 운동 방향이 모아져야 한다. 윤 일병 사건 이후 사병 월급부터 군 사법제도까지 다양한 논의가 나오지만, 강고한 군대를 바꾸기 위해서는 이렇게 분산된 목소리로는 힘을 얻지 못한다. 대통령도 못 바꾼 군대를 바꾸려면, 간명하게 “국방감시관 도입이냐 아니냐”로 가야 한다. 
 
 
 
군복무 단축 공약, 국정과제에서 슬그머니 빠졌지만… 
 
사실 야권과 진보 진영에서 목소리를 모을 수 있는 국방 관련 정책은 한손에 꼽을 정도이다. 생각의 차이가 커서가 아니라 정책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2010년 야권연대 당시 정책 합의에서 병역 관련 정책이라고 제시된 것이 ‘군복무 기간 단축’과 ‘병역 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제 도입’ 단 두 가지였다. 그나마 이 두 정책에 대해서도 현재 아무런 계획이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18개월로 군복무를 단축하겠다는 공약을 1년도 안 되어 슬그머니 국정 과제에서 뺄 때도 제대로 물고 늘어지는 국회의원 하나 없었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독일식 국방감시관은 단지 효율적인 옴부즈맨 제도가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 군대 문을 열 수 있는 열쇠이다. 의회 소속으로 독립성을 보장받으며, 예고 없는 부대방문권을 포함한 정보권으로 진정받은 사건을 충분히 조사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기 때문이다. 독일에서 국방감시관은 군에 대한 민주주의 통제의 양 날개 중 하나로 인식된다. 한 날개가 의회를 통한 예산과 정책 통제라면, 또 다른 날개는 국방감시관을 통해 군 명령 계통에서 벌어지는 인권침해를 감시하는 것이다. 
 
윤 일병에게 대한민국 군대는 지옥이었다. 윤 일병에게만 그랬을까. 이미 너무 늦었다. 억울한 죽음 뒤에 잠깐 외치는 구호로는 군대를 바꿀 수 없다. 이제 이것 하나라도 벼려내자. 
2014/09/04 21:47 2014/09/04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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