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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12 19:41, 보내자원고_Column
심심할 수 있는 자유


스마트폰에서 중고 2G폰으로 갈아탄 지 1년. 결정적인 변화는 심심해졌다는 것이다. 
틈만 나면 스마트폰을 확인했던 그동안, 심심할 수 있는 자유를 빼앗기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임재성 (평화 연구자)
 
[368호] 승인 2014.10.08

 
스마트폰을 없앤 지 1년이 조금 넘었다. 눈 뜨자마자 가장 먼저 더듬더듬 찾고, 자기 직전까지(사실 침대에 누워서도 한참을) 쥐고 있었던 스마트폰. 그걸로 뭐 대단한 걸 한 것도 아니다. 별것 없는 메일 확인, SNS 확인을 마치면 습관처럼 포털 사이트의 뉴스를 ‘터치’했다. 명색이 직업이 공부인 연구자인데, 정작 정통한 것은 연예 뉴스였다. 
그런 날이 있다. 갑자기 화장실 청소가 하고 싶은 날. 불현듯 하드 디스크 ‘조각모음’을 하고 싶은 날. 그날이 그랬다. 중독된 그 ‘물건’을 끊어내고 싶어졌다. 의지로 안 되면 구조를 바꿔야 하니까. 결심을 하니 일은 순조로웠다. 5만원 내외 가격의 중고 휴대전화를 인터넷으로 주문하고, 스마트폰에서 뺀 유심 칩을 넣으니 끝났다(쓰던 번호 그대로!).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은 PC 버전으로 확인하면 그만이었다.
 
스마트폰을 서랍 깊숙이 넣어둔 첫날 밤이 아직도 생각난다. 불을 끄고 나니, 이렇게 방이 어두웠나 싶었다. 새로운 삶을 살 것처럼 호기롭게 스마트폰을 밀쳐냈으나, 금방 그리워졌다. 급변하는 세계정세와 떨어져 나 혼자 이렇게 어둠 속에 누워 있다는 것이 생경했던 밤. 결국 스탠드 불을 켜고 책을 집었다. 오랜만에 자기 전 침대에서 책을 읽었다.
 
“없애니 좋아? 불편하지 않아?” “불편하지. 그래도 심심해서 좋아. 아니 심심할 수 있어서 좋아.” 스마트폰이 없는 사람은 왜 스마트폰이 아닌지를 설명해야 한다. 소수자의 운명이랄까. 나의 답변은 ‘심심할 수 있는 자유’이다. 사실 스마트폰을 없앤 후 변화는 예상과 달랐다. 공부할 시간이 마구 생기지는 않았다. 딴짓은 어떻게든 한다. 대인관계에서 그렇게 소외되지도 않았다. 이미 우리는 다른 사람과 연락할 수단을 넘치도록 가지고 있다. 결정적인 변화는 심심해졌다는 것이다. 길을 걸어가며, 무언가를 기다리며, 방 안에 우두커니 있으며, 심심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스마트폰을 하루 종일 틈만 나면 확인했던 그동안, 심심할 수 있는 자유를 빼앗기고 있었다는 것을. 재독 철학자 한병철은 <피로사회>에서 현대사회가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심심함’을 다르게 평가한다. 단순한 분주함은 어떤 새로운 것도 낳지 못한다. 그저 이미 있던 것을 반복하고 재생할 뿐이다. 이 분주한 반복이 멈출 때, 무언가를 하지 않고, 혹은 다른 무언가를 시작해야 한다는 강박에서도 벗어나 그저 심심함을 느낄 때, 우리는 비로소 지나간 시간과 경험에 차분한 시선을 보낼 수 있다. 창조적 사색의 시작이다. 철학자 발터 베냐민은 이 상태를 ‘깊은 심심함’이라 정의한다. 깊은 심심함은 “경험의 알을 품고 있는 꿈의 새”이다. 심심한 자만이 가만히 생각을 하고, 경험의 알을 부화시켜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맹목적으로 날아드는 정보더미에서 거리를 두어보자 

 
스마트폰과 함께 전 국민이 매일 유례없이 많은 활자를 읽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많이 읽고 있지만, 정작 우리는 얼마나 두터운 생각을 만들어내고 있을까? 손에 쥐어진 스마트폰으로 시시각각 정보가 쏟아지고 머리와 눈은 잠시의 쉼도 없이 그걸 따라가고 있다. 생각하기 위해 읽어야 하는데, 읽기만 한다. 사유의 시간이 배제된 읽기는 그저 시류에 따라 생각을 흘러가게 할 뿐이다. 댓글을 조작해 여론을 호도하겠다는 국정원의 범죄에 분노하면서도 한편으로 오싹한 것은, 그것이 ‘무사유 읽기’의 본질을 꿰뚫었기 때문이다. 심심함이라는 생각할 틈이 배제된 읽기는 유치한 댓글 조작만으로도 충분히 흔들릴 만큼 얇고도 가볍다.
 
 
모두들 스마트폰을 없애자는, ‘21세기 러다이트’를 말하고자 함은 아니다. 속도와 성과를 강요하는 이 사회에서 스마트폰 하나 없앤다고 심심할 자유가 단번에 되찾아진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맹목적으로 날아드는 정보더미에서 거리를 두면, 분명 틈이 생긴다. 몽롱한 정신으로 읽어대기를 그만두고 모두들 어떻게든 심심한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지난 1년, 심심했던 내 시간은 참 좋았다. 자신만의 닻을 내리기 위해서는 심심해야만 한다는 것을 알았다. 
2014/11/12 19:41 2014/11/12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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