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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12 19:54, 보내자원고_Column
군대 문제에 대한 한국 진보의 무지 또는 무능

 [73호] 2014년 09월 30일 (화)
 
http://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2838
 
임재성 ⃒  평화연구자

 
젊은이들이 죽어나올 때, 군대 문은 잠깐씩 열렸다. 2005년 연천군 GP 총기난사 사고와 육군훈련소 인분사건이 발생하자 ‘병영문화 개선’이라는 이름으로 대대적인 군 개혁이 시도되었다. 노무현 정권의 강력한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그러나 잠깐 열렸던 문은 곧 다시 닫혔고, 닫힌 군대는 정권이 바뀌자 원래 자리로 회귀했다. 군인 인권 신장의 내용을 담아 상정되었던 군인복무기본법은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폐기되었다. 2011년 천안함 사건 이후 이러한 회귀는 더욱 본격화 된다. 18개월까지 줄어가던 군복무기간을 다시 24개월로 환원해야 한다는 주장, 1만 명 규모 긴급동원 예비군 신설 주장까지 제기될 정도였다. 반면 천안함이라는 비극과 복무기간을 늘이는 것 사이에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는가를 묻는, 진보진영이 온당하게 냈어야 할 비판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2014년 군대에서 발생한 연이은 사건들도 결국 이렇게 결론이 날 가능성이 높다. 제대를 3개월 앞두고 총기난사를 벌인 임 병장, 동료 부대원들에게 사실상 고문을 당해 비통하게 죽은 윤 일병. 이 비참한 현실 앞에 권력자들은 다시 위원회를 꾸리고 개혁을 말하고 있다. 보수 언론까지 입을 모아 군대 인권을 언급하며, 외국 사례들을 꺼내든다. 그러나 잠시뿐이다. 군부에게는 차라리 좋은 출구전략이다. 위원회는 몇 번의 회의를 마치고 구속력 없는 대안을 제시할 것이고, 군부는 그 중 입맛에 맞는 몇 가지를 취사선택하는 것으로 개혁은 마무리 된다. 그 때 보수언론은 군부의 선택을 ‘불가피’하다며 옹호할 것이고, 잠시 열린 군대 문은 슬그머니 닫힐 것이다.
 
 
반복되는 개혁 실패에 대해, 군대 폐쇄성이나 정권 의지부족을 비판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군대 개혁 문제에서 저 둘은 고정된 상수에 가깝다. 개혁의 대상이 스스로를 개혁하는 법은 없기 때문이다. 실패 원인은 한국 진보세력에게 군대 문제에 대한 연구와 정책이 부재했다는 사실에서 찾아야 한다. 이슈가 커졌을 때에만 몇 마디 외치고 말았던 것은 아닌지를, 군대의 닫힌 문을 다시 열기 위해 집요하게 그 문을 두드렸는지를 성찰해보아야 한다. 텅 빈 부재의 자리를 더듬는 것은 출발점을 확인하기 위함이다.

 
징병제에 대한 대항 담론 부재
 
군대 문제에 대한 연구의 빈곤함은, 그 ‘부재’라는 현상 자체를 연구해야할 만큼 심각하다. 광복 이후 징병제만큼 거대한 규모로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제도가 드문데도 이에 대한 한국 학계의 비판적 연구는 손에 꼽힐 정도이다. 2000년대 들어와서 여성주의 연구자들이 군대의 남성성과 군사주의 문화를 연구했던 것이 군대 문제에 대한 비판적 연구의 시초라 할 수 있지만, 이후 크게 확장되지 못하고 있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비롯한 개별 사안에 대안 모색 차원의 연구가 조금씩 쌓이고 있으나, 이 역시 군대라는 조직, 징병제라는 제도를 폭넓게 조망하는 역할을 수행하지는 못하고 있다.
 

연구 부재는 대항 담론 부재와 연결된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군대에 가야한다”라는 당위적 의무 담론을 ‘징병제 담론’이라 명명한다면, 이 징병제 담론 속에서 과연 몇 명의 사람들이 얼마의 시간 동안 군대에 가는 것이 적당한가, 군복무라는 희생에 대한 합당한 보상은 무엇인가와 같은 문제제기는 자연스레 억압된다. 모든 남자의 당연한 의무 앞에서 기간과 규모, 보상을 따져보자고 하는 것은 불경스러운 것, 혹은 비겁한 것으로 취급당하기 때문이다. 당연하고 신성한 의무만이 내세워지는 담론 속에서 비판과 대안의 목소리는 만들어질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병역이 ‘당연시 되는’ 과정은 결코 자연스럽지 않았다. 박정희가 유신정권 초기 ‘입영률 100%’를 내세우며 펼쳤던 강압적 지침들을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당위로 포장된 징병제 담론의 맨얼굴을 확인할 수 있다. 1970년대 초반, 모든 영화관에서 애국가 필름이 돌아가기 시작한 바로 그 때, 박정희는 “앞으로 법을 만들어서라도 병역을 기피한 본인과 그 부모가 이 사회에서 머리를 들고 살지 못하는 사회 기풍을 만들도록 하라”라고 지시했다.(1) 이후 대검찰청은 병역기피를 ‘사회악’이라 규정했고, 문교부는 새마을운동과 더불어 ‘기피자 없는 마을 만들기 운동’을 전개했다.(2) 병역의무자는 항상 주민등록증과 병역수첩을 휴대하고 다녀야 했다.(3) 종교적 신념으로 병역을 거부했던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에 대한 병무청 직원들의 불법적 강제연행까지 빈번하게 이루어졌을 정도였다. 
 

신성한 국방의 의무가 관철되었던 이 과정을 역사적, 사회과학적으로 드러내고 평가하는 연구가 쌓일 때, 징병제 담론의 허상을 온전하게 비판할 수 있는 대항 언어와 사고가 생길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진보적 연구자들조차 그동안 군대와 병역을 온전한 학문의 대상으로 취급하지 않아왔다. 매년 20만 명이 넘는 이들이 들어가고 나오며 사회화되는, 거대한 이데올로기 기구에 대해서 지금도 극소수의 연구자만이 경험적 연구를 이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대항 담론이 부재한 곳에서는 국가의 목소리만이 울려 퍼질 수밖에 없다.

 
군대 문제에 대한 우리의 ‘정책’은 무엇인가?
  
대항 담론 부재는 정책 부재로 이어진다. 군대 문제만큼 전 국민이 자기 자신의 문제로서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사안도 없다. 이 민감한 사안에 대한 진보세력의 정책과 대안은 무엇이었는가? 대선 때마다 복무 단축 공약이 제시되고, ‘선심성’ 공약이라는 상투적 반론이 제기될 뿐이었지, 그 과정에서 진보세력의 의미 있는 정책이나 입장이 제시된 적은 없다. 1971년 김대중 당시 대통령 후보가 “현 향토예비군은 이중병역 의무를 강요한 위헌적인 것이다”라며 예비군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웠던 것이 그나마 역사적 사례로서 두드러지게 확인할 수 있는 정도이다.
 
 
2000년대 이후 군 인권 관련 이슈가 제기되고, 이에 대한 시민사회의 노력이 이어지면서 몇 가지 구체화된 안들은 존재한다. ‘군복무기간 단축’과 ‘사병월급 인상’이라는 정책 방향이 대표적이다.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제도 도입(허용)도 있다. 전시상황에만 예외적으로 허용되어야 하는 군사법원 폐지, 의회 산하에서 독립적으로 군대를 감시하는 독일식 국방감시관 제도 도입, 포괄적인 군인인권기본법 제정 등도 대표적으로 검토된 군대 개혁 방안이다. 실제 이 방안들 중에서는 노무현 정권 시절 실제 집행에 들어가거나, 그 시행을 예정해둔 것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면서 대부분이 중단되거나 폐기되었다.
 
 
이런 실패를 단지 정권 교체의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앞선 ‘안’들이 온전한 진보세력의 ‘정책’이 아니었기 때문에 쉽게 중단될 수 있었다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 이 안들은 시민사회 안에서 논쟁과 숙성의 과정이 생략된 채, 정치세력이 자신의 이름을 건 대안으로 내세우고 설득하는 과정 없이 도입되고 집행되었다. 그렇기에 그 안들이 폐기되었을 때 지속적으로 물고 늘어지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심지어 박근혜 대통령 공약이었던 18개월로 군복무기간을 단축하는 것이 국정과제에서 밀려날 때조차 제대로 된 문제제기 하나 없었다. 한국 진보세력이 군복무기간의 문제를, 더 나아가 군대 문제 자체를 자신의 과제로, 정책으로 삼고 있지 않다는 방증이다.
 
 
정책 부재는 맥락 없는 급진화로 이어진다. 불쑥 등장하는 모병제 주장이 바로 그것이다. 모병제로의 전환은 군사적 필요에 의한 세계적인 추세일 뿐이다. 그럼에도 모든 문제를 일소에 해결할 수 있는 파격적 대안처럼 모병제가 제시되곤 하는 것은 민망할 따름이다. 그렇게는 모병제가 시행될 수도 없고, 또 시행되는 것이 바람직하지도 않다. 모병제 국가 대부분에서 모병 인구의 상당수는 저소득 소외계층이다. 현재도 군대에 대한 민주적 감시와 통제가 어려운데, 모병제로 바뀌면 개입의 근거마저 희박해질 것이다. 모병제가 되면 사병들이 높은 월급(온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주장, 이에 맞서 그럴만한 재정이 없어서 시기상조라는 주장이야 말로 본말이 전도된 논쟁이다. 징병제 하에서도 사병들에게 적절한 임금이 지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군대에 대한 ‘운동’에서 시작
  
군대 문제에 대한 진보적 연구와 정책이 부재했던 원인은 ‘운동’의 부재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군대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감시하고, 대안을 고민하는 시민사회 영역의 집단이 없었기 때문에 군대 문제는 정책이 되지도, 연구대상이 되지도 못했다.(4) 따라서 부재를 채우는 시작은, 무엇보다도 지속적인 시민사회의 관심과 활동이어야 한다. 다행이 이번 윤 일병 사건을 세상에 알리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군인권센터’를 비롯하여 한국사회에서 뒤늦게 형성되고 있는 평화운동 주체들이 군대 문제를 자신의 영역운동으로 삼고 있다. 군대라는 거대한 조직을 감시하고, 변화를 이끌어내고자 하는 대항세력으로서의 존재감은 아직 미미하지만, 부재한 상황을 깼다는 것 자체가 가지는 의미는 크다.  

 
군대에 대한 시민사회 활동이 가질 두 가지 원칙이 있다. 하나는 지속성이다. 윤 일병 사망사건 이후 열렸던 많은 토론회에서, 발제자들이 공통적으로 꺼냈던 이야기가 “새로운 내용은 없다”는 것이다. 이미 2005년 GP 총기난사 사건 때 검토되었던 대안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명박 정권에서 그 대안들이 백지화 된 이후 그것들을 지속적으로 관철시키기 위한 노력이 있었던가? 또 다시 젊은이가 죽어나오자 이런 대안이 이전부터 있다고 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국방감시관 제도나, 군인권법 등의 안들에 대한 시민사회의 합의를 만들고, 진보세력의 대표적인 정책으로 구성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 반값등록금이나 무상급식처럼, 진보세력의 국방정책이 무엇이며, 이것이 왜 필요한지를 지속적으로 알려가야 한다.
 
 
다른 하나의 원칙은 대안적 안보관을 제시하는 것이다. 한국 군대는 저비용 다병주의라는, 낙후된 논리에 근거하고 있다. 무상에 가까운 징병제로서 많은 숫자의 병력을 유지하는 것, 이것이 높은 전력을 담보한다는 논리이다. 노무현 정권은 ‘국방개혁2020’을 통해 고비용 정예주의를 제시했다. 첨단 무기를 확보하고 병력은 일정 수준에서 제한하는 방식이다. 이는 군사적 측면에서 효율적인 개혁일 수는 있겠으나, 진보적-평화적 관점에서는 대안이 되기 어렵다. 무엇보다 상당한 국방예산이 전제되어야 하며(이명박 정권이 국방개혁2020을 비판했던 주요한 이유이기도 했다), 한국이 놓인 지정학적 위치에서 주변국들의 군비경쟁 악순환에 촉매로 기능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에 맞서 진보세력의 국방 논리는 무엇이어야 할까? 대안적 입장이 설 때만이 군대 문제에 대한 개별 정책들도 보다 설득력을 가지고,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존재하는 냉전적 공포 역시 넘어설 수 있다.
 
 
경무장 방어주의, 혹은 경무장 평화주의가 진보세력의 국방 논리가 되어야 함을 제안해본다. 침략전쟁을 부인한다는 우리 헌법 평화주의를 실현하는, 강대국들이 쌓인 숙명적 위치를 역으로 이용하는 안보전략이다. 선제적 군축과 평화주의라는 도덕적 우위를 통해 지역안보와 공동 군축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가 병력 30만 명, 복무기간 1년, 사병 모두에 대한 ‘평균임금’ 지급 등으로 그 일단의 모습을 그린 바 있기도 하다. 이러한 평화주의 논리 위에서 지속적으로 운동이 만들어져 갈 때, 일회적인 안이 아닌 정책이 쌓일 것이고, 징병제 담론의 균열을 만들어내는 새로운 담론도 등장할 것이다. 닫힌 군대 문을 그렇게 계속 두드려나갈 때, 또 다른 시체로 문이 열리기 전에 우리가 먼저 그 문을 열 수 있을 것이다.

 
 
글·임재성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박사과정 수료. 쓴 책으로는 『삼켜야 했던 평화의 언어』, 쓴 논문으로는 「군사주의에 갇힌 헌법재판소」, 「징병제 형성과정을 통해서 본 양심적 병역거부의 역사」 등이 있다.

 
 

(1) 「빨갱이 몰아 때리고 물고문 집총거부자 ‘고의적 타살’」, 2009년 1월 16일, 『한겨레』.
(2) 신병식, 「박정희 시대의 일상생활과 군사주의」, 『경제와사회』 제72호, 2006, 159~161쪽.
(3) 「병무행정쇄신에관한지침부여」(대통령훈령 제34호, 1973.2.26, 제정).
(4)  병역거부 사례가 이를 단적으로 증명한다. 해방이후 병역거부자들은 언제나 존재해왔다. 수많은 판사들이 그들에게 유죄를 선고했고, 감옥에서 많은 민주화 운동가들이 그들을 만났지만, 아무도 이를 ‘문제’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2000년 일군의 평화운동가들이 병역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제도 개선을 내건 운동이 등장하자 비로소 병역거부는 ‘문제’가 될 수 있었고, 이후 연구와 정책이 이어졌다. 자세한 내용은 임재성, 『삼켜야 했던 평화의 언어』, 2011, 그린비 참조.
2014/11/12 19:54 2014/11/12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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