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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12 21:47, 보내자원고_Column
다시 세월호가 가라앉아도 이상하지 않은 사회
 
사회는 집단적 경험과 기억을 바탕으로 발전한다. 
문제의 원인과 실체를 밝혀내고, 판단하고, 기억해가는 과정에서 사회의 수준이 결판난다. 그러나 한국은 어떠한가.
 
임재성 (평화 연구자)
 
[385호] 승인 2015.02.02
 
 
 
 
대학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플래카드다. “경축, ○○○ 교수 ××상 수상” “○○연구소 최우수로 평가”. 이런 플래카드가 많이 걸린 대학은 수준 높은 대학인가? 자랑할 만한 일을 자랑하는 지극히 평범한 대학일 뿐이다. 반면 “반성, ○○○ 교수 논문 표절” “○○연구소 연구비 횡령으로 지원 중단”. 이런 내용을 건 대학이 있다면 최고 수준의 대학임이 분명하다. 스스로의 손으로 치부를 드러내고, 성찰하고, 또 기억해가는 공동체. 이 공동체는 시간이 지날수록 깊고 또 깊게 성숙해갈 것이고, 과오를 다시 반복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경제위기 속에서도 성장을 계속해가는 독일을 배우자는 이야기가 많다. 간과되기 쉬운 지점은 경제성장만으로 환원될 수 없는 독일 사회의 ‘수준’이다. 수도 베를린 한복판에는 유럽에서 학살당한 유대인 기념비가 있다. 무려 2711개의 기념비가 육중하고도 무겁게 600만명이 넘는 죽음을 기리고 있다. 베를린 시민들은 매일 자신의 공동체가 벌였던 끔찍한 과오를 마주하면서 살아간다. 물론 기념비에 대한 찬반 대립이 있고, 이제는 그만 불편한 마음을 털어버리자는 주장도 있다. 논쟁 속에서도 독일 사회는 꿋꿋하게 가해자로서의 기억을 마주한다.
 
일본 도쿄 시청 앞에 축구장 몇 개 크기의 일본군 성노예 추모공원이 있다고 상상해보자. 국방부 앞에 위치한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자리에 우리 군대가 제주에서, 베트남에서, 광주에서 저질렀던 민간인 학살에 대해 사죄를 구하는 시설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일본이나 우리의 역사 인식, 그리고 공동체 수준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수준’ 이야기를 길게 한 것은, 테러와의 전쟁에서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조직적 고문이 있었음을 밝혀낸 다이앤 파인스타인 상원의원을 보면서 미국 사회의 수준이 부러웠기 때문이다. 미국은 자신들의 국제적 위상을 바닥까지 추락시킬 것이 분명한 사실을 담은 보고서를 공개했다. 이 보고서를 통해 미국은 다른 나라에 인권을 부르짖으면서도 정작 자신들은 전 세계에서 고문을 자행한 파렴치한 국가가 되었다. 경쟁국들은 이 기회를 놓칠세라 미국을 맹비난했다. 미국의 추악한 짓은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그 과정에서 나는 오히려 미국 사회의 수준에 경외감을 갖게 되었다. 파인스타인과 같은 인물이 상원의원이라는 지위에서 국가의 치부를 조사할 수 있었으며, 그 결과를 공식 보고서로 제출할 수 있었고, 그 내용이 모든 언론을 통해 퍼질 수 있는 사회. 다시는 그 어떤 명분으로도 고문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는 의지와 결단. 이게 사회의 수준이다.
 
 
미국이 더 이상 고문을 반복할 수 없는 이유
 
사회는 집단적 경험과 기억을 바탕으로 발전한다. 자신들이 저지른 잘못을 직시하고 잊지 않는 사회만이 조금이나마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국정원이나 군이 조직적으로 트위터 글을 올리고 댓글을 조작해서 대선 개입을 했을 수 있다. 위기관리 체계가 엉망이어서 세월호가 그렇게 가라앉은 것일 수 있다. 하나하나가 부끄럽기 짝이 없지만 우리가 살아가야 할 사회이다. 여기서 시작해야 한다. 이 문제들의 원인과 실체를 우리 손으로 밝혀내고, 판단하고, 기억해가는 과정에서 우리 사회의 수준이 결판난다.
 
하나둘씩 확인되는 이 사회의 수준은 모두가 아는 대로다. 국정원의 대선 개입을 수사했던 검사들은 모두 옷을 벗거나 좌천되었고, 사법부는 맞춤형 면죄부를 차례로 선사하고 있다. 진실이 은폐되고 있다는 것을 모두가 알지만 그 어떤 정치인도, 사회운동도 흐름을 바꾸지 못한다. 세월호 진상 규명에는 이제 여당 국회의원의 입에서 ‘세금 도둑’이라는 경멸까지 나오고 있다. 사회의 수준은 미래를 결정한다. 미국은 더 이상의 고문을 반복하지 않을 것이다. 그 사회의 수준이 그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다시 세월호가 가라앉아도 이상하지 않다. 우리 사회의 수준이 그 정도이기에. 
2015/02/12 21:47 2015/02/12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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