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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28 17:57, 보내자원고_Column
한국전쟁의 또 다른 속살, '홉스' 대 '칸트'
 
[프레시안 books] 김학재 <판문점 체제의 기원>
 
임재성 변호사
 
2015.05.22 17:31:06
 
 
 
"A급 학자는 선을 긋고, B급 학자는 그 선이 맞는지 틀린지 논쟁을 하고, C급 학자는 그 선과 논쟁을 정리해서 논문 편수를 채운다." 대학원에 다니며 좌표에 찍힌 수많은 점들(산포도)을 어떻게 해석할지 감이 잡히지 않아 머리를 싸매고 있을 때, 한 선배가 해 준 이야기였다. 많은 점(사례)들 사이로 기준으로 삼을 수 있는 선을 긋고, 선이 나눈 각 면에 속하는 사례들의 공통된 속성을 증명해내는 것. 이게 A급 학자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그만큼 어떤 사회적 현상에 선을 긋는다는 것은 어렵고도 조심스럽다. 나아가 그 선이 중요한 설명력을 가지려면 해당 현상에 대한 총체적 이해가 수반되어야 한다.
 
이미 학계에서 극찬을 받고 있는 김학재 베를린자유대학교 동아시아 대학원 연구원의 <판문점 체제의 기원 : 한국전쟁과 자유주의 평화 기획>(후마니타스, 2015년 3월 펴냄)에 대한 글을 쓰면서, "저자야말로 A급 학자"와 같은 민망한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책을 읽는 내내 '선을 긋는 연구'라는 느낌이 강렬했기에 대학원 시절 에피소드가 떠올랐던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한국전쟁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사실에 새로운 선을 새기고 있다.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에서 직접 발굴해낸 1차 자료들부터 학계의 최근 논의들까지 망라되었다는 것도 이 '선'에 비하면 부차적이다. 최장집 고려대학교 명예교수의 추천사처럼 "자료의 새로운 발굴과 그에 대한 해석보다 한국 사회의 척박한 지적 풍토에서 어떻게 문제를 새롭게 볼 수 있는 이론을 구성할 수 있었는가"가 이 책이 가지는 고유한 가치이며 성취이다.
 
 
자유주의 평화 기획의 두 축, 홉스와 칸트 


ⓒ후마니타스
 
지금까지 한국전쟁에 대한 가장 격렬한 정치적·학문적 쟁점은(비록 아직까지도 분명하게 정리되지 않았지만) 전쟁의 성격과 기원이었다. 국가 간 전쟁이냐 내전이냐, 전쟁의 책임은 누구에게 지울 수 있는가에 대한 부분에 담론이 집중되어 있었다. 이를 저자는 "형법적 사고방식"에 사로잡혀왔던 것이라 평한다. 전쟁의 결과들을 모두 전쟁을 시작한 '적들의 책임'으로 귀속시키고 단죄하기 위한 사고방식이다. "소련과 북한을 만악의 근원으로 만들려 해왔던 쪽이나, 미국이라는 제국의 책임에만 주목하는 입장이 마치 작용과 반작용처럼, 이분법적 구도 안에서 국가 간 '비난 게임'을 강화해온 것을 우리는 오랫동안 지켜봐야 했다."(25쪽).
 
이러한 형법적 사고방식에서 이루어진 한국전쟁 연구는 두 가지 중요한 맹점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는 한국전쟁이 세계사적 맥락에서 이루어진 '평화 기획'들과 맞물려 그 자장 속에서 전개되고 종식되었다는 사실을 간과했다는 점이다. 한국전쟁은 미국, 중국, 소련 등 강대국 간의 충돌을 넘어서서 근대가 고안한 '자유주의 평화 기획' 간의 충돌이기도 했다. 다른 하나는 종전 이후 60년이 넘도록 이어진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불안정한 상태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 즉 한국전쟁을 제대로 끝내고 평화를 시작할 구상을 담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대안의 부재는 기존 연구가 '자유주의 평화 기획'의 맥락을 간과했다는 점에서 기인하는 측면이 크다. 한국전쟁의 과정과 결과를 만들어냈던 결정적 맥락을 간과한 채 이를 극복할 대안이 온전하게 만들어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유주의 평화 기획'이란 무엇인가? 저자는 '전쟁의 기원'에 머물렀던 한국전쟁에 대한 문제의식을 '평화의 기원'으로 전환하기 위해서 홉스와 칸트로 대변되는 두 '자유주의 평화 기획'의 축을 세운다.
 
먼저 '홉스의 평화 기획'은 차별적 위계질서와 안보로서의 평화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영국 내 신교와 구교 간 내전이 한창이던 시기에 살았던 홉스는 인간의 자연 상태란 모두가 모두에 대한 전쟁을 치르는 상황이라고 보았다. 홉스는 이런 상태에서 '국가만이 시민들에게 평화를 보장해 줄 수 있으며, 평화를 실제로 보장해 주는 공동체만을 국가로 인정할 수 있다'며 강력한 국가를 내적 질서의 보증자로 제안했다. 내전 이후 등장한 시민 평화의 본질은 곧 안전(security)이었다. 홉스는 안전 개념을 근대국가의 핵심 개념으로 만들었다. (…) 홉스는 안전은 약속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에 대한 처벌, 효과적인 폭력, 즉 '힘'으로서만 보증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제재를 부여할 최종적 권위가 바로 국가의 주권과 힘이었다."(54쪽).
 
우리가 흔히 말하는 리바이어던은 사실 내전을 종식하기 위한, 홉스의 평화 기획이었다. 국가라는 리바이어던에게 무력을 독점시키고, 강력한 질서와 처벌이 집행되게 함으로써 주권국가를 통한 평화가 실현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 기획은 종교전쟁 이후 250년간 서구에서 지배적인 평화 기획으로 단단하게 자리 잡았다. 그러나 홉스의 평화 기획은 국내 안보 외에 국제 질서까지 염두에 두지는 않았다. 국제 질서, 특히 국가 간 전쟁은 전후 상호 협약이나 힘의 균형을 통한 억제 정도의 차원에서 고려될 뿐이었다. 또한 홉스의 기획은 정의(正義)라는 가치보다는 질서(秩序)라는 가치에 훨씬 친화적인 평화였다. "피지배자들이 지도자들에게 대항해 반란을 일으키는 것을 원하지 않고 독재 체제를 평화적으로 받아들이기를 바라는 강제 평화"라는 비판이 등장했던 이유다. 
 
18세기 말 등장한 칸트의 평화 기획은 홉스의 평화 기획에 대한 대항적 성격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칸트의 평화 기획은 초국적 법치로서의 평화라고 정의할 수 있다. "보편적 국제법을 통한 초국적 사법 주권 질서의 구축, 전쟁 자체의 범죄화와 국제기구의 무력 개입에서부터, 보편적 집단 안보 기획, 보편적 개인의 인권 원칙 등을 통해 개별 국가의 주권보다 상위의 초국적 보편 원칙과 권위를 구축하려는 목적"을 가진 기획이다(182쪽). 칸트의 평화 기획에 따라 비엔나, 베르사유, 유엔으로 이어지는 초국적 법치 기획들이 이어졌다. 유엔뿐만 아니라 우리가 현재 조우하고 있는 국제형사재판소, 유럽연합, 지역안보기구 등도 이러한 칸트의 평화 기획 맥락에서 위치 지울 수 있는 제도들이다. 
 
이렇게 '홉스의 평화 기획'과 '칸트의 평화 기획'이라는 두 축을 단단하게 쌓은 후, 저자는 근대의 두 자유주의 평화 기획이 한국전쟁에 어떻게 영향을 끼쳤으며, 그 과정에서 어떤 결과를 야기했는지를 살핀다. 이는 한국전쟁을 자유주의 평화 기획이라는 세계사적 맥락에 연결함과 동시에, 그 평화 기획이 가진 모순과 한계를 한국전쟁을 통해서 세계에 보이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한국전쟁의 네 국면과 '평화 기획'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년이란 시점은 칸트의 평화 기획과 홉스의 평화 기획이 지배적 헤게모니를 두고 치열하게 다툼을 하던 시점이었다. 20세기 전반기를 채웠던 1·2차 세계대전과 대공황, 파시즘을 경험하면서 인류는 초국적 법치를 통한 평화를 요구했다. 국제연맹과 국제연합으로 이어지는 흐름은 칸트의 평화 기획이 물질화되는 과정으로 보기 충분했다. 그러나 냉전의 도래로 칸트의 평화 기획에서 홉스의 평화 기획으로 주도권이 넘어갔다. "홉스가 내전에 맞서는 리바이어던을 강조했듯이, 미국의 냉전 봉쇄 전략은 미국이 소련과 마주하고 있는 상황을 '전 지구적 내전'으로 간주했고, 미국 스스로 압도적 무력과 권위를 독점해 자유주의적 리바이어던"(528쪽)이 되려고 했던 것이다. 한국전쟁은 바로 홉스와 칸트의 평화 기획 한가운데에 놓여 있었다.
 
저자는 한국전쟁을 칸트와 홉스의 평화 기획이 끼친 영향력이 판이하게 달랐던 4국면으로 분류하며 새로운 선을 긋는다. 전쟁 초기인 1950년 6∼10월까지(1국면)와 포로 송환 문제에 있어서 인권 담론을 이 바탕으로 자원 송환 원칙이 관철되었던 1951년 7월부터 1953년 1월까지(3국면)은 한국전쟁이 칸트의 평화 기획의 자장 속에 놓여 있었다. 반면 중국의 개입으로 전쟁 국면이 전환된 1950년 10월부터 1951년 9월까지(2국면)와 휴전 이후 차별적 지역 질서가 구축된 1953년 7월부터 1955년 4월까지(4국면)는 홉스적 '강자의 질서'가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각 국면 모두 분석의 함의는 상당하나, 이 중 1국면과 2국면에 대해서만 살펴보자.
 
첫 번째 국면은 전쟁 초기인 1950년 6∼10월까지 유엔 개입의 국면이다. 이때 한국전쟁은 칸트의 평화 기획 자장 속에 놓여 있었다. 유엔과 미국은 냉전 시기 전체를 포함해서 유엔 역사에서 유례가 없는 중요한 결정과 행동들을 신속하게 집행했다. 기존 연구들은 이때 유엔의 결정과 개입을 적나라한 현실 정치적 권력투쟁의 산물로만 이해해왔지만, 저자는 이를 국제적 규범의 맥락 나아가 칸트의 초국적 법치주의 맥락을 간과한 것이라 지적한다. 한국전쟁 초기 유엔 안보리 결의안은 그 자체로는 국제적으로 가장 이상적인 원칙들을 반영했다. 특정 지역에서 발생한 군사적 충돌을 국가 간 전쟁이 아닌, 지구 공동체 내부에서 발생한 범죄행위로 여겼고, 교전 상대자를 범죄자로 간주했다. 
 
그렇다면 이 한국전쟁 초기 칸트의 평화 기획에 따른 유엔의 결의안들은 어떤 결과를 야기했는가? 초국적 법치에 대한 제도와 합의가 충분하지 않았던 상황에서 등장한 처벌적 기획(안보리 결의 등)은 엄연히 현존하는 기존 국가 간 주권 원칙의 힘을 간과했고, 분쟁 당사자들 간의 평화를 유도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으며, 그 결과 수많은 반발과 보복을 초래했다. 국제법의 이상은 정치적으로 도구화되었으며, 초국적 법치를 통한 처벌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다. 
 
탈냉전 이후 칸트의 평화 기획이 다시 주류의 자리를 점하고 있는 시점에서, 한국전쟁 1국면과 칸트의 평화 기획을 조망하는 분석은 현재적이다. 현재 국제사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군사적, 경제적 제재는 모두 인도적 개입이라는, 보편적 규범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당장 북한 인권 문제만 하더라도 칸트의 초국적 법치라는 관점에서도 본다면 더 강력한 제재로 나아가는 것이 '평화'에 부합한다. 그러나 한국전쟁 1국면에서 칸트의 평화 기획이 왜 처절한 실패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성찰이 공유되지 않는다면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칸트의 기획은 또 다른 반평화를 야기할 것이다. 
 
중국의 개입이 시작된 1950년 10월부터 홉스의 평화 기획이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중국의 개입으로 보편적·이상적 원칙들은 다시 힘의 노골적인 대립으로 변했고, 이때 평화란 힘의 균형을 의미했다. 이 책에서 저자의 분석이 가장 빛나는 지점은 바로 이 2국면에 대한 분석이다. 현재 동아시아의 불안정성은 역사적으로 홉스의 평화 기획이 압도했던 한국전쟁 2국면에 기원을 두고 있다는 주장은 도전적이다. 중국의 개입으로 미국의 냉전 인식이 한국전쟁을 지배하였고, 이는 3가지 방식의 차별적 대응으로 이어졌다. "먼저 미국은 중국과 북한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아 자유주의 질서로부터 이들을 정치적으로 배제했고, 한국은 분쟁을 지역화·탈정치화(군사·기술적 정전)시켰으며, 일본은 자유주의 정치경제 시스템으로 깊숙이 포섭했다(자유주의적 평화)."(537쪽). 
 
'적'들을 배제하고, '우리'를 깊숙이 당기며, 그 사이에 한반도라는 전장을 설정했던 것. 이것이 바로 저자가 이야기하는 '판문점 체제'(임시 군사 정전체제와 미국과의 상호방위조약에 근거한 군사 동맹 체제)의 기원이다. 배제와 포섭 사이에서 한반도의 전쟁은 정치적 쟁점이 완전히 제거된 상태로 순수한 군사적 의제에 갇혀 정전 체제로 종결되었다. 이후 일본은 '평화헌법 자본주의'로서 발전하였고, 한국은 '냉전의 박물관', '국가보안법 자본주의'로서 군사화되어간다. 이렇게 배제와 포섭으로 구별될 지역 공간에서 회복적 과정은 존재할 수 없었다. 독일 문제를 처음부터 영국·프랑스·러시아가 함께 풀어나갔던 것과 대비되게 일본 문제는 사실상 미국 단독으로 처리되었다. 여전히 지속되는 전후 보상 문제와 역사 인식의 괴리, 배제된 주체였던 북한의 군사적 도발은 모두 한국전쟁 2국면이 배태한 판문점 체제의 후과라고 할 수 있다.

 
 
아시아 패러독스와 뒤르켐의 사회적 평화 
 
저자는 반복적으로 아시아 패러독스를 언급하면서, 판문점 체제가 아시아 패러독스를 이해하는 주요한 열쇠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아시아 패러독스란 상당한 경제적 교역 질서를 가짐에도 불구하고 공동의 안보 기구나 상설 국제기구가 없거나 취약한 아시아의 현재 상황이 모순적이라는, 1993년 로버트 매닝(Robert Manning)이 고안한 이후 아시아의 특수성을 표현함에 있어서 자주 사용되는 개념이다. 판문점 체제라는 홉스적 기획이 현재 동아시아 지역 질서 부재의 주요한 원인이라는 저자의 문제의식에 일정하게 공감하면서도, 아시아 패러독스라는 개념 자체를 물신화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일정한 언급을 하고자 한다.
 
얼마 전 김남국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칼럼('아시안 패러독스'와 동아시아 지역 통합, 2015. 5. 17. <한겨레>)에서 명확하게 지적한 바 있듯이 아시아 패러독스의 가장 큰 문제는 유럽과 같은 정치적 통합을 하나의 달성해야 할 목표로 상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시아, 특히 동아시아의 경우 19세기까지 중국, 20세기 일본과 같은 압도적인 패권국가가 존재했다는 역사적 차이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유럽과 같은 지역공동체는 또 다른 위험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었다. 또한 현재 유럽연합에서 정치적·경제적 통합으로 야기되는 민주적 의사 결정의 제한과 시장 논리에 따른 통합의 폐해는 지역연합질서가 반드시 달성해야 할 목표로서 인정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시아 패러독스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판문점 체제를 경유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은 그 자체의 논리적 정합성과는 별개로 비판적으로 다뤄야 할 개념을 전제로 삼고 있는 듯하여 추후의 논의가 요구된다고 보인다. 
 
홉스와 칸트의 평화 기획을 통해 한국전쟁에 새로운 선을 그은 저자는 이 두 평화 기획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서 뒤르켐의 사회적 평화를 제안한다. 홉스와 칸트의 평화 기획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평화 기획으로서 기능하고 있다. 다만, 탈냉전 이후 각 평화 기획은 지역 간 부와 빈곤에 따라, 즉 경제적 격차에 따라 전쟁과 평화의 공간으로 분리되어 작동한다. 칸트의 평화 기획이 작동하는 국가군과 홉스의 평화 기획이 작동하는 국가군, 그리고 홉스의 평화 기획조차 작동하지 못하는 지역으로 나뉘어 평화와 전쟁 역시 양극화된 것이다. 그 속에서 저자는 "강력한 국가의 건설이나 보편적 국제법의 추구가 아니라, 먼저 사회 자체의 분업의 전개로 인한 사회적 연대의 발전"(555쪽)이라는 고전 사회학자 뒤르켐의 사회분업론에서 유래하는 통찰을 평화의 이론으로 재구성한다. 
 
그러나 뒤르켐의 '연대로서의 평화'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지, 역사적인 경험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저자의 근거는 부족하다. 저자가 책에서 다룬 1955년 반둥회의는 그런 의미에서 저자의 사회적 평화를 실현한 구체적 사례로서 더 깊이 있게 분석되어야 할 것이다. 아시아 사회의 역사성을 담은 평화, 집단적 체제 선택, 유엔 자체의 개혁, 제3세계의 요구로서의 평화라는 반둥회의의 가치들을 판문점 체제의 극복을 위해 재전유할 수 있다면, 한국전쟁 위에 새롭게 그은 이 책의 선은 현재, 그리고 미래와 닿을 수 있을 것이다.
 
*임재성은 변호사이며,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2015/05/28 17:57 2015/05/28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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