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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06 19:58, 보내자원고_Column
우리가 ‘살아 있는 인간’이라면

장애인 이동권 투쟁은 무언가를 빼앗겼다는 사실을 느끼는 것 자체가 중요한 투쟁이었다.
‘진실에 대한 권리’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이를 빼앗긴 줄도 모르는 것 아닌가.
 
 
임재성 (평화 연구자) 
[406호] 승인 2015.06.26 


“살아 있는 인간은, 빼앗기면 화를 내고 맞으면 맞서서 싸웁니다.” 대형 마트 노동자들이 부당한 해고에 맞서 싸우는 이야기를 담은 웹툰 <송곳>에서, 공인노무사 구고신이 노조 교육을 하며 한 이야기다. 많은 독자들이 이 말에 공감하면서도 동시에 부끄러움을 느꼈던 것은, 자신은 과연 ‘살아 있는 인간’일까 하는 질문 앞에 초라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빼앗기면’에 밑줄을 긋고 싶다. 화를 내고 말고의 문제 이전에, 빼앗긴 것조차 느끼지 못한다면 어떨까.
 
2000년대 이후 가장 성공적인 운동이었다고 평가받는 ‘장애인 이동권 투쟁’은 무언가를 빼앗겼다는 사실을 느끼는 것 자체가 중요한 투쟁이었다. 경사로 없는 계단, 휠체어로는 접근조차 불가능한 버스와 지하철. 모든 이동수단에서 장애인들이 배제되어 있었지만, 이를 두고 장애인들의 권리가 박탈된 것이라고 느끼는 이는 거의 없었다. “장애인도 버스 타고 싶다”라는 외침과 함께 이동권(Right to Mobility)이라는 낮선 권리(언어)가 등장하자, 비로소 박탈의 감각이 깨어났다. 자신들에게도 당연히 이동할 수 있는 권리가 있었음을, 그리고 그것을 사회가 빼앗아갔음을 느꼈다. 장애인들은 정당한 분노를 드러냈고, 시혜가 아닌 몫을 달라고 싸웠다. 살아 있는 인간이었다. 살아 있는 인간들이 지금의 경사로, 저상버스, 지하철 승강기를 만들었다.
 
사실 권리란 빼앗긴 것에 붙이는 이름이다. 빼앗긴 것을 다시 찾기 위해 붙인다. 충분히 향유하고 있는 것이라면 굳이 권리라 이름 붙일 이유가 없다. 이동할 자유를 빼앗긴 이들이 ‘이동권’을, 강제 철거로 쫓겨난 이들이 ‘주거권’을 말해왔다. 그래서 권리는 박탈의 감각을 벼리게 한다. 내가 빼앗긴 것이 무엇인지 늘 깨어 있게 한다. 
최근 한 세미나에서 ‘진실에 대한 권리(Right to the Truth)’를 소개받았다. 이런 것이 있었나 싶었지만 이미 국제사회에서는 다양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유엔 인권최고대표부가 2007년에 낸 ‘진실에 대한 권리 보고서’에 따르면 “침해 행위가 발생하게 된 전체 맥락과 원인을 포함하여, 발생한 사실과 관련된 종합적이고 완전한 진실, 원인이 된 특별한 상황, 가해자 및 관계자를 밝힐 것을 국가에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진실에 관한 권리이다. 보고서는 이 권리가 “희생자 및 그들의 가족이 가지는 개인적인 권리임과 동시에 공동체적이고 사회적 권리”라고 서술해놓았다.
 
  
기억하겠다고 다짐하기 전에 ‘기억할 진실’을 요구하자
 
지금 우리 공동체는 ‘진실에 대한 권리’를 빼앗긴 채, 빼앗긴 줄도 모른 채 굴러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세월호의 ‘진실’을 요구할 권리는 유가족들만의 권리가 아니다. 우리 모두의 권리다. 자신의 권리를 빼앗긴 줄도 모른 채, 그저 거리에 서 있는 유가족들을 안타깝게만 여긴 것은 아닐까. 304명이 희생당한 세월호의 진실조차 무겁게 가라앉은 사회에서 진실이라는 말을 꺼내는 것 자체가 우습게 되어버린 꼴은 아닐까.
 
권리를 빼앗긴 자리에 의무만이 넘실댄다. 세월호, 천안함, 호국영령들과 한국전쟁.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맹세가 공허한 이유는 뭘 잊지 않겠다는 것인지가 비어 있기 때문이다. 앞서의 유엔 보고서는 진실에 대한 권리가 ‘진실을 보존할 의무’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말한다. 권리와 의무가 짝이라면, ‘진실을 요구할 권리’는 ‘역사적 기억을 지킬 의무’와 이어져 있는 것이다. 기억하겠다고 다짐하기 전에, 기억할 진실을 요구하자. 살아 있는 인간은 진실을 빼앗기면 화를 내고, 진실을 감추면 맞서서 싸운다.
2015/08/06 19:58 2015/08/06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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