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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29 23:30, 보내자원고_Column

병역거부자들이 '전여옥 사건' 재판장님께

정의를 위한 법은 약자의 편에 서야 합니다

2009.4.23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116680

이 글은 양심적 병역거부자 37명이 함께 쓰고 제출한 것입니다.  <편집자말>

지난 2월 27일 국회의사당 민원실에서 부산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회원들에게 집단 폭행을 당해 눈을 다쳤다며 입원했던 전여옥 한나라당 의원이 지난달 20일 오전 서울 용산구 순천향대병원에서 눈에 안대를 한 채 부축을 받으며 퇴원하고 있다.

ⓒ 유성호

재판장님

저희들은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입니다. 반전평화라는 가치를 위해서 총을 들 수 없다는 신념을 지키고자 군대 대신 감옥을 택한 이들입니다. 이 글을 함께 준비한 대부분은 1년 6월 이상의 수감생활을 마친 사람들이고, 몇몇은 현재 수감 중이거나 수감을 준비하고 있는 젊은이들입니다. 전과자, 때로는 범법자라고 불리기도 하는 저희가 이렇게 재판장님께 '탄원서'라는 형식으로 글을 쓴다는 것이 실제 재판에 도움이 될까 조금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서 폭력에 대해서 삶을 걸고 고민하고 있는 저희들이 지금의 상황에서 무언가 꼭 드려야 할 말씀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세상에서는 지금 이 사건을 '전여옥 폭행사건'이라고 합니다. 언어라는 것이 가지는 규정성은 무섭습니다. 이러한 규정성을 '담론'이라고 하기도 하고, '프레임'이라고 하기도 하지만 저희들은 또 하나의 폭력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이 사건이 '전여옥 폭행사건'으로 규정된다면 법정에서 가릴 것은 단 하나입니다. 폭행의 정도입니다. 머리채를 잡았는가? 눈을 찔렀는가? 지난 4월 10일에 열렸던 2차 공판이 그랬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검찰 측 증인들이 '전여옥 의원은 눈을 찔린 적이 없다', '때린 것이 아니라 멱살을 잡은 상태에서 밀었다'와 같이 조서와는 다른 진술을 해서 언론의 주목을 크게 받았습니다.

물론 엄정하게 폭행의 정도를 밝히는 것은 중요합니다. 특히 지금처럼 피해자의 진술과 가해자로 지목된 이의 진술이 다른 경우에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부분은 저희가 논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재판부가 당시 목격자들인 양쪽 증인들의 증언을 토대로 현명한 판단을 할 것이라 기대할 뿐입니다.

저희는 '전여옥 폭행사건'이라는 명칭이 또 다른 폭력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모든 언어는 권력관계를 담고 있습니다. 작년 촛불이 한참일 때,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이 성추행을 당하며 닭장차에 태워지고, 민주당 안민석 의원은 경찰에게 집단구타를 당해 깁스를 하고 다녔습니다. 하지만 '이정희 폭행사건', '안민석 폭행사건'이라는 이야기는 거의 회자되지도 못했습니다. 이라크에서 무장세력의 저항은 테러이고 매스컴을 장식하지만, 미군의 점령은 '재건사업'이라고 불리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또한 '전여옥 폭행사건'에는 이미 피해자인 전여옥 의원과 그 의원을 폭행한 가해자의 구조가 전제되어 있습니다. 압도적인 사회적 힘의 차이를 가진 두 주체를 피해자와 가해자라는 대립구도로만 볼 수 있을까요? 이런 모든 맥락을 버린 채, 폭행의 정도만 따지는 판결은 최소한의 법치만을 실현할 뿐입니다. 저희는 공평한 법을 넘어서서 약자를 위한 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세상이 공평하지 않은 상황에서 법만이 공평할 수 있다는 가정은 모순입니다. 정의의 여신 디케가 이 사회에서 진정한 정의를 추구한다면 눈을 가린 천을 풀어야 합니다.

지금 구치소에 구속되어 계신 민가협 이정이 선생님. 재판장님도 잘 아시겠지만, 민가협은 민주화운동으로 자식을 감옥에 보낸 어머님들이 밖에서 수감된 자식을 위한 활동을 벌여나가면서 조직된 단체입니다. 이정이 선생님의 자식 역시 동의대 사건으로 복역했습니다. 동의대 사건에서 경찰이 죽는 불상사가 벌어졌기에 이정이 선생님은 자식을 감옥에 보낸 어머니의 고통과 함께 '경찰을 죽인 살인마의 가족'이라는 낙인 속에서 살아가셔야 했습니다.

동의대 사건으로 구속된 이들 중에는 많게는 무기징역까지 받은 이들도 있었습니다. 출소하고도 후유증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자식들을 지켜봐야 했던 이정이 선생님은 사망한 경찰의 유족과도 관계를 유지하고자 노력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삶 모두를 통해서 우리의 슬픈 과거사를 묵묵히 책임지려고 하셨던 분이었습니다.

민가협 부산지부 이정이 전 회장이 지난 2월 27일 오후 전여옥 의원의 '민주화보상법 재심의'에 항의하고자 국회를 방문했다. 이날 오후 국회 본청 앞에서 전 의원과 마주친 이 전 회장은 실랑이를 벌였고 이후 후생관 앞에서 경찰에 연행되는 도중 이 전 회장이 충격으로 쓰러져 있다. 실랑이 과정에서 전 의원은 부상당해 병원에 입원했으며 이 전 회장은 영등포서에 연행됐다. (이 사진은 휴대폰 엄지뉴스 #5505를 통해 전송된 사진입니다.)

ⓒ 문경미

이 분이 왜 전여옥 의원에게 가셨을까요? 전여옥 의원은 최근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된 사건의 재심기간을 연장하겠다는 법안을 준비하겠다고 했습니다. 구체적으로 2002년에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받은 동의대 사건을 거론했습니다. 동의대 사건의 관련자들은 '극렬 불법 폭력배'이며, 이를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한 것은 '부모에게 칼부림을 한 패륜아에게 효자상을 안긴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만약 저희가 이정이 선생님이었다면, 저 말을 듣고 어땠을까 상상해 봅니다. 상스런 말을 넘어서서 구체적인 법안을 통해서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된 것을 뒤집겠다는 전여옥 의원의 결정에 이견을 표하기 위해서는 어떤 선택지가 가능했을까요?

이정이 선생님은 구속된 이후 한 언론사의와 인터뷰에서 전여옥 의원과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고 하셨습니다. 동의대 사건을 잘 모른다면 본인이 설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의원 사무실로 들어가는 이정이 선생님은 당연히 저지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수십 년 지나도록 자기 자식이 군대에서 어떻게 죽었는지도 모르는 유족들은 군의문사진상규명 사업을 가로막은 한나라당 신지호 의원실에 드러누울 수라도 있었지만, 이정이 선생님과 민가협 어머니들은 방법이 없었습니다.

이정이 선생님은 그러다 우연하게 전여옥 의원이 옆으로 지나갔다고 했습니다. 황급하게 법안에 대해서 물어보려고 하는데 돌아섰다고 합니다. 그래서 머리채를 붙잡았다고 하셨습니다. 왜 그냥 가냐고. 선생님은 만약 그렇게 만날 줄 알았다면 그렇게 행동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어쨌든 저로 인해서 병원에 입원까지 하셨다니 죄송하다'는 말씀까지 인터뷰에 남기셨습니다. 선생님은 먼저 사과하셨습니다.

맞습니다. 저희는 한국사회에서 전쟁과 폭력에 대해서 가장 근본적으로 반대하는 사람들입니다. 정의로운 전쟁은 없다고 생각하며, 갈등해결의 방식으로서 폭력은 지양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분명 폭력은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될 수 없습니다. 만약 저희가 그 순간에 있었다면, 어머님들의 마음을 진정시키고 보다 구체적인 방식으로 전여옥 의원의 '역주행'을 막아보자고 제안 드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폭력에는 맥락이 존재하고, 그것을 삭제한 채로 '모든 폭력은 악'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진정한 의미의 비폭력도 법치주의도 아닙니다. 오히려 폭력의 맥락을 적극적으로 살필 때, 폭력을 극복하는 가능성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탱크에 돌을 던지는 팔레스타인 아이들에게 이스라엘 군인들은 테러리스트라고 합니다. 돌을 던졌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 아이들에게는 자신의 삶을 파괴한 그 탱크를 몰아낼 다른 어떤 방법이 있었을까요? 결국 그러한 방법이 없을 때, 자신들을 테러리스트라고 규정하는 권력만이 있을 때, 그들이 커서 총을 잡게 되는 것입니다.

'전여옥 의원 폭행사건'의 가해자로 68세의 이정이 선생님은 '도주의 우려가 있다'며 보석도 기각된 채 구치소에 갇혀 계십니다. 이정이 선생님은 자신의 자식을 '패륜아'라고 부르며, 삶을 바쳐 이룬 민주화 인정을 되돌리겠다는 국회의원에게 어떻게 항의할 수 있었을까요. 약자에게는 선택항이 많지 않습니다. 모든 파업은 불법파업이고 모든 시위가 불법시위가 되는 시대에 노모의 절절한 하소연 역시 결국 불법폭력이 되어버렸습니다.

한쪽에서는 국회의원에 대한 폭력은 의회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라며 더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용산참사를 현장조사 하겠다고 나선 창조한국당 유원일 의원에게 돌아온 것은 "국회의원 그 자식 밟아버려"라는 명령과 함께 쏟아진 공권력의 주먹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신성한 국회의원에 대해 폭력을 행사한 혐의로 구속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68세의 노인은 도주의 우려를 이유로 구속되어 있습니다. 세상은 결코 공평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법은 보다 적극적으로 이 사회의 약자에게 손 내밀어주어야 합니다.

재판장님. 법이란 그 자체로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법전의 법을 그대로 법정에 가져온다고 해서 법치주의가 확립되는 것도 아니라 들었습니다. 법관의 전문적이고, 인간적인 해석과 사안의 사회적 맥락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한 적용이 이루어져야만 법은 온전한 구실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희는 재판장님이 이 사건을 다룸에 있어서 사려 깊은 시선을 보여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009년 4월 22일, 양심적 병역거부자 37명이 함께 쓰고 제출함.

(강철민, 경수, 고동주, 권순욱, 김도형, 김석민, 김영익, 김영진, 김치수, 김태훈, 김훈태, 나동혁, 문상현, 박철, 송인욱, 안홍렬, 염창근, 오승록, 오정록, 오정민, 오태양, 유정민석, 유호근, 은국, 이길준, 이승규, 이용석, 이원표, 임성환, 임재성, 임치윤, 임태훈, 정재훈, 조정의민, 최재영, 최준호, 최진 이상 37명)

2010/09/29 23:30 2010/09/29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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