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기억은 힘이 되고
임선수는 규칙적으로
분류_Category
이것이소개_about
마음의병_Diary
보내자원고_Column
나름아티클_Article
우리애기_Book
하자평화연구_Field
일단작품세계_Photo
생계형디자인_Design
기억력강화_Scrap
모른척해줘_missingyou
325061 Visitors up to today!
Today 14 hit, Yesterday 62 hit
2016/09/17 18:18, 보내자원고_Column

단언컨대 그게 폭력이다


평화박물관 건립추진위원회는
20년이 안 되는 한국 평화운동의 역사에서 
가장 인상적인 활동을 보여온 단체다. 

그런데 2014년에 이어 올해 또다시 내홍을 겪고 있다.


임재성 (평화 연구자) 
2016년 06월 30일 목요일 제458호
한국 평화운동의 역사는 길지 않다. 연구자들은 대부분 1990년대 중·후반을 시작으로 보는데, 이렇게 20년이 안 되는 한국 평화운동의 역사에서 가장 인상적인 단체를 꼽으라면 주저 없이 평화박물관 건립추진위원회(이하 ‘평박’)라고 할 것이다.

평박은 1999년 한국군의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문제가 공론화되면서 출발했다. 2000년 위안부 피해자 문명금·김옥주 할머니가 베트남에서 일어난 만행을 ‘사과’하며 ‘한·베 평화역사관 건립기금’에 써달라며 7000만원을 기탁했고, 이를 종잣돈으로 삼아 2003년 설립되었다. 이후 평박은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탈핵·원폭 피해자 지원, 평화 관련 전시·교육 등 대중 단체로서 활동을 개척해나갔다.

특히 평박이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문제에서 시작해 이 문제를 이어갔다는 것의 의미는 상당하다. ‘평화’라는 상태는 폭력에 대한 사유와 성찰이 가능한 때다. 자신을 폭력의 가해자 자리에 세울 수 있을 때, 기꺼이 그 자리에서 온전한 책임을 받아들일 수 있을 때 평화는 가능하다. 그래서 최근 여성혐오 범죄 논의에 ‘남성을 가해자 취급해서 불편하다’는 반응은 폭력에 대한 무사유 그 자체다. 그런 맥락에서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의 공론화는 가해자로서 자리를 만들어냈던 평화운동의 결정적 사건이고, 그 한가운데 평박이 있었다.

평화활동가 개인을 꼽자면 단연 한홍구 교수이다.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양심적 병역거부, 과거 국가폭력 청산 등 2000년대 평화운동 쟁점에 늘 그가 있었다. 당시로서는 낯설던 ‘군사주의’라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왕성한 강연과 저술을 하여 지식인으로서의 역할도 충실했다. 그랬던 평박과 한홍구 교수였다. 10년간 회원으로 있으면서 늘 평박의 존재와 활동을 자랑스러워했다. 한홍구 교수를 보며 실천하는 지식인의 전형을 그려보기도 했다. 평화운동에 이런 ‘어른’이 있다는 사실이 고맙고 또 든든했다.
 
2014년 1월 당시 평박 사무처 활동가 6명은 한홍구 교수와의 갈등으로 평박을 떠났다. 짧게는 1년, 길게는 7년 가까이 평박에서 활동한 사람들이 “평화박물관을 포함해 시민사회단체 어디에서도 저희와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하며” 사퇴한 것이다. 활동가들은 한홍구 교수의 평박 사유화를 지적하며, 평박 내 민주주의가 훼손되었다고 외쳤지만, 한홍구 교수는 이 외침에 공식적으로 답변하지 않았다. 비판하기엔 너무 큰 힘을 가진 한홍구 교수였기에, 활동가들의 문제 제기는 언론에 보도되지도, 시민사회 안에서 제대로 논의되지도 않았다. 평박은 새로운 활동가들을 뽑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활동을 이어갔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박영희 그림



일부 이사 사퇴하고 남은 이사들은 사무처를 폐쇄한 상태

2016년 지금 또다시 평박에서 사람들이 나오고 있다. 이사들까지 사퇴를 이어간다. “오늘 민주주의 실체여야 할 평화단체에 한 줌 자신의 권력을 구축하고 청년 노동자들에게 갑질 폭력을 휘두르는 것이야말로 바로 반헌법 행위임을 정녕 모른단 말입니까?” 평박 이사에서 사퇴한 장혜옥 전교조 전 위원장의 글이다. 한홍구 교수는 사실관계를 내세우며 반박하고 있으나, 뜻을 같이했던 많은 이들이 이미 한홍구 교수의 독선이 단체를 망가뜨렸다고 지적한다.

평화는 자신을 가해자의 자리에 세울 수 있을 때 가능하다. ‘내가 누군가에게 폭력을 행사할 수 있다. 그래서 누군가 다칠 수 있다.’ 그것을 인정하고 그런 자신을 두려워하는 것. 그게 평화박물관의 시작이었다고 믿는다. 이번 평박 사태와 관련해 한홍구 교수가 쓴 글마다 확인되는 것은 무오류의 확신이다. 권력관계 속에서 자신이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그게 폭력이다. 한국 평화운동의 역사가 이렇게 땅바닥에 내팽개쳐지고 있다. 남은 평박 이사들은 사무처를 폐쇄하고 평박 고유의 사업들도 사실상 종료시켰다.
2016/09/17 18:18 2016/09/17 18:18
Name
Password
Homepage
Secret
2016/09/17 18:09, 보내자원고_Column

계속된 인권 침해는 새롭지 않은가

여전히 매년 500명에 가까운 젊은이가 종교 또는 신념을 이유로 감옥에 가고 있지만 
세상도 사람들도 더 이상 놀라워하지 않는다. 계속된 인권침해는 새롭지 않아서일까.

임재성 (평화 연구자) 


출소한 지 10년이 되는 날, 이 글을 쓰고 있다. 양심적 병역거부로 1년6월의 형을 받고 서울구치소·충주구치소에서 수감 생활을 하다 2006년 5월4일 출소했다. 출소를 환영한다며 감옥 철문 앞에 모인 친구들이 두부를 사왔기에 한 입 베어 먹었는데, 함께 오신 어머니가 화를 내셨다. 죄도 없는 네가 왜 두부를 먹느냐고.

남들 다 가는 군대를 왜 못 가겠다는 거냐며, 통곡했던 어머니는 구속된 이후 반년이 넘도록 편지 한 통 쓰지 못하셨다. 수감 6개월이 지나가던 2005년 여름, 큰 용기를 내 접견을 오신 어머니는 ‘이제는 나라에서 법이 만들어지게 해달라고 기도한다’며 조심스레 마음을 여셨다. 누구를 때리지도, 누구의 것을 뺏은 적도 없는 아들이 감옥에 있어야만 하는 현실. 수많은 젊은이가 ‘총을 들 수 없고, 살인 훈련을 할 수 없다’는 신념 때문에 감옥에 가는 현실을 비로소 인정하셨던 것이다.

출소하고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가끔 듣는 질문이 있다. “병역거부자로 살아가며 힘든 점은 무엇입니까?” 전과자의 불이익이나 가족의 고통 등을 예상하며 던진 질문이겠지만, 내 답변은 ‘비참함’이다. 병역거부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안 좋은 방식으로 귀결되고 있다. 그래서 비참하고, 병역거부자로서 고통스럽다.

‘익숙해져버린 인권침해.’ 한국 사회에서 병역거부 문제의 현재 모습이다. 여전히 매년 500명에 가까운 젊은이가 종교 또는 신념을 이유로 감옥에 가고 있지만, 수십 년째 그래왔던 것 아니냐며 세상도, 사람들도 더 이상 이 문제에 대해 놀라워하거나 이야기하지 않는다. 종종 언론사 기자들을 만나 병역거부 문제를 다뤄줄 수 있는지 문의해보지만, 하나같이 돌아오는 답변은 ‘새로운 것이 없어서 실어줄 수 없다’이다. 계속된 인권침해는 새롭지 않다는 것이다.

언론만의 이야기일까? 2004년 개원한 17대 국회에서는 병역거부 문제가 국방위원회 등에서 치열하게 논의되었지만, 18·19대 국회에서는 관련 법안만 발의되었을 뿐 상임위원회에 안건 상정조차 이루어지지 못했다. 국방부와 병무청도 초창기에는 내부에 연구위원회를 설치하고, 외부 연구용역을 진행하는 등 고민을 했지만 이제는 국민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다는 핑계로 아무런 해결 의지도 보이지 않는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박영희 그림



유엔의 ‘강력한’ 권고도 아무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병역거부자들조차 체념하고 있다. 대체복무 제도가 인정된다면 1.5~2배가 더 긴 복무라도 기꺼이 수행하겠다며, 세상과 법정에서 ‘기회를 달라’고 주장하던 병역거부자들은 사라졌다. 이제는 묵묵히 감옥에 간다. 바뀔 것이라는 기대를 아예 하지 않는 것이다. 몇몇은 한국을 떠나겠다며 프랑스·캐나다 등에 난민 신청까지 했다. 신청을 받은 국가들은 한국 정도의 규모와 수준을 가진 나라가 병역거부자 수백명을 수감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워한다. 국제인권규약상 허용하는 병역거부를 법으로 처벌하는 한국에서 ‘박해’를 피해 다른 나라를 찾은 이들을 난민으로 인정한다. 한국 국민이 다른 나라에서 난민으로 인정받는다는 것은 국가의 수치이건만, 그 누구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는 대한민국 4차 국가보고서 심의 결과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은 병역거부자 전원을 즉시 석방할 것”을 한국 정부에 요구했다(2015년 10월). 유례없는 수준의 표현이다. 그리고 1년 안에 병역거부 관련 이행 상황을 보고하라고 주문했다. 이러한 유엔의 요구는 새로울 것 없는 병역거부 관련 이야기이기에 한국 사회에는 거의 알려질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

그래서 이 새로울 것 없는 칼럼을 쓴다. 병역거부자들을 즉각 석방해야 한다는 가장 원칙적인 주장이, 남을 해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감옥으로 보내는 사회에, 그것이 익숙해져버린 사람들에게 다시금 전해질 수 있도록.

 

2016/09/17 18:09 2016/09/17 18:09
Name
Password
Homepage
Secret
*1 *2 *3 *4 *5 *6 ... *1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