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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09 19:15, 보내자원고_Column
50년의 침묵, 또다시 ‘가만히 있으라’

‘12·28 한·일 외교장관회담 공동 기자회견문’은
더 이상 위안부에 대해 이야기하지 말라는 합의문이었다. 
합의문은 망각이라는 또 다른 범죄를 노골적으로 실행하려 하고 있다.

[437호] 승인 2016.02.01

임재성 (평화 연구자) 

2015년 12월28일자 ‘한·일 외교장관회담 공동 기자회견문’(이하 합의문)은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침묵하라는 합의문이었다. 합의문 1142자 중 한 번도 나오지 않았지만, 평범한 사람이라면 읽으면서 가장 굵게 박히는 단어가 ‘침묵’일 수밖에 없다. 더 이상 위안부에 대해 이야기하지 말라는 것.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합의문 발표 직후 “우리의 아이나 손자, 그리고 그다음 세대의 아이들에게 사죄를 계속해야 한다는 숙명을 짊어지게 해서는 안 된다”라고 이야기한 것은 당연하다. 그는 합의문을 쉽게 풀어서 설명했을 뿐이다.

야당과 시민사회는 합의문이 무효라고 주장한다. 아니다. 합의문은 범죄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이중의 범죄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는 조직적인 전시 강간 범죄이고, 다른 하나는 반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그 죄를 망각했다는 범죄다. 많은 이가 일본 정부에 첫 번째 범죄에 대해 사과하고 법적 책임을 지라고 요구한다. 이번 합의문에 대해서도 일본군에 의한 전시 강간 범죄를 인정하고 법적 책임을 진다는 내용이 충분하지 않았음을 지적한다. 그것이 전부일까? 합의문은 망각이라는 두 번째 범죄를 노골적으로 다시 실행하려 하고 있다.

1991년 8월 김학순 할머니가 자신의 이름을 밝히며 국내 거주자 최초로 본인이 위안부였음을 증언했을 때, 세상은 위안부라는 조직적 강간 시스템 자체의 잔혹함에도 놀랐지만, 그 피해자들이 전쟁이 끝나고 50년 동안 침묵을 강요당해왔다는 것에도 충격을 받았다. 수많은 전(前) 위안부 여성들은 피해의 경험을 ‘내 자신의 치욕’으로 받아들이고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조차 그 사실을 밝히지 못한 채 살아왔다. 고향에 돌아가지 못한 경우도 빈번했다(이 망각의 범죄에서 한국 사회 역시 공범이었다).

1991년 망각의 범죄에 균열이 갔던 것은,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은 위안부가 아니다”라는 피해자의 절규가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목소리를 들어줄 수 있는 사회가 생겨났기 때문이다. 1990년 11월 결성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는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전 위안부 여성들의 이야기를 청취하고 기록하는 노력 속에서 등장했다. 이 조사와 호소를 바탕으로 비로소 김학순 할머니의 이야기가 시작될 수 있었다. 그래서 피해자의 이야기는 이야기를 하는 자와 듣는 자의 공동 작업이다.



망각하지 않고 소녀상 옆에서 다시 말하고, 다시 들어야 할 때


합의문은 이 공동 작업의 중지를 요구한다. 할머니들의 의사 한번 물어보지 않고 핵무기를 해체하듯 불가역적으로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었다며 더 이상 문제 삼을 수 없다고 한다. 사과의 진정성, 배상 방식의 적절성을 논하기 이전에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그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사회를 닫아버리는 합의문의 내용은 망각의 범죄 그 자체다.

무엇보다 합의문 중 ‘소녀상’ 이전이 언급된 것은 처참하다. 소녀상은 2011년 12월14일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집회가 1000차까지 이어진 것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매주 수요일 할머니들은 일본 대사관 앞에 모였고, 초라한 마이크 하나에 의지해 일본과 세상에 이야기를 전했다. 그 수요일이 1000번이 되던 날 세워진 소녀상. 소녀상은 일본군 위안부 범죄를 고발하는 상징이기도 하지만, 할머니들이 이야기해온 시간과 공간을 기념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을 치우란다.

비참하지만 달리 방법이 있을 것 같지 않다. 결국 다시 말하고, 다시 들어야 할 것이다. 최종적이고, 불가역으로 끝났다는 사람들 앞에서 말하고 듣는 ‘관계’를 이어가는 것. 망각의 범죄에 공범이 되지 않는 길이다(이 글은 우에노 지즈코의 <위안부를 둘러싼 기억의 정치학>에서 도움받았음을 밝힙니다).


2016/04/09 19:15 2016/04/09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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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09 18:54, 보내자원고_Column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로스쿨 제도’


법조인 양성 방식의 변화를 오랫동안 모색해왔고 그 결과 로스쿨 제도가 도입되었다.
사시 존치냐 폐지냐를 두고 싸울 게 아니라 로스쿨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에 집중하는 게 낫다.


임재성 (평화 연구자)

[431호] 승인 2015.12.17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24991


수능에 문제가 있다고 학력고사를 부활해야 할까. 아니면 부득불 수능과 학력고사를 동시에 시행해야 할까. 얼마 전 법무부의 사법고시 폐지 4년 유예 방침 발표 이후 사시 존치를 둘러싼 사회적 대립이 격화되고 있다. 일견 ‘로스쿨’ 대 ‘사법고시’ 간의 충돌로 보이지만, 이러한 구조는 전혀 생산적이지 않다. 한국 사회는 짧게는 10년, 길게는 김영삼 정권 시절부터 법조인 양성 방식의 변화를 모색했고, 그 결과 로스쿨 제도가 도입되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갈등은 도입 7년이 지났는데도 왜 여전히 초기부터 문제점으로 지적되어온 부분들이 개선되지 않고 있는지에 대한 분노로 이동해야 한다. 로스쿨 등록금이 비싸다는 비판은 왜 등록금을 낮추는 방안으로 연결되지 않았을까? 입학 과정의 투명성을 강화하자는 논의는 왜 없었을까? 로스쿨에 대한 비판이 제도 개선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사시 존치’와 같은 닫힌 논의로만 귀결되는 이유 중 하나는 한국 사회에서 로스쿨을 ‘자신의 성과’라고 내세우며 제도의 안착과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집단이 사실상 없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권하에서 로스쿨이 도입되었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은 이 제도를 본인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노무현 정권 시절 법무부 장관을 지냈던 이는 한 강연에서 “내가 장관이 되었을 때는 이미 로스쿨이 결정된 이후라 개입할 여지가 없었다. 등록금이 비싼 것이 좀 문제라 생각한다”라는 취지의 이야기를 했는데, 현재 새정치민주연합의 한가한 시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매해 2000명이 입학하고, 1500명의 법조인이 양성되는 제도에 대해 새누리당도 당론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시민사회라고 다를까. 우리 사회의 중요한 문제에 대해 어김없이 의견을 내온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역시 로스쿨에 대해서만은 “입장이 없음”이 입장이었다. 그나마 로스쿨 도입에 적극적 역할을 해온 참여연대만이 최근까지 꾸준한 실태조사와 견해 등을 발표해왔으나, 예전의 동력은 사라진 지 오래다. 참여연대 활동가가 사석에서 “로스쿨에 대한 책임을 우리라도 지려고 한다”라고 토로한 것은 절박함의 표현이었다. 로스쿨을 운영하는 대학과 교수들조차 어느덧 제도의 충실한 운영자가 되어버렸다. 외부의 비판에 민감하게 응답하고 내부를 개선할 방안을 고심하는 로스쿨 교수는 드물다. 이러한 무책임의 결과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왜곡된 갈등이다..




입학생의 인적사항을 홈페이지에 모두 공개하는 하버드 로스쿨

사시 존치냐 폐지냐를 두고 싸울 일이 아니다. 로스쿨을 그렇게 바꾸면 된다. 등록금 문제만 하더라도 거점국립대학들의 등록금을 반액 이하로 낮추는 방안, 공익활동을 전제로 후불로 받는 방안 등을 당장 검토할 수 있다. 교육부는 지난 5월 ‘로스쿨에 특별전형으로 입학한 저소득층 학생 300여 명의 등록금을 전액 면제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는데, 바로 이런 식의 개입과 변화가 필요한 것이다.

하버드 로스쿨은 홈페이지에서 입학생의 인적사항을 모두 공개한다. 학부 학점, 로스쿨 입학시험(LSAT) 점수부터 출신국, 출신 학부, 인종까지 내보이며 구성원의 ‘다양성’을 자랑한다. 내일이라도 시작할 수 있는 방안이다. 단일한 시험으로 한 줄로 세워 자르는 사법고시보다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에게 법조인이 될 기회가 열렸는지를 증명할 수 있는 통로이며, 이런 방식으로 다양성이 더욱 확보될 것이다.

사법고시 존치를 둘러싸고 사시 준비생들이 삭발을, 로스쿨 재학생들은 수업 거부에 자퇴서까지 제출하고 있다. 법원과 검찰의 독립성이 뒤흔들릴 때 1인 시위 한번 한 적 없는 예비 법조인들이 본인들의 이해관계 앞에서만 치열하다는 비판을 마음에 새겨야 하겠지만, 자신들의 미래가 흔들릴 때 누구나 절박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강조컨대 화살표가 바뀌었으면 한다. 로스쿨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로. 이 과정 속에서 로스쿨 제도의 개선과 변화를 추동하는 젊고 새로운 ‘집단’이 탄생할 수 있기를 바란다.

2016/04/09 18:54 2016/04/09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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