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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02 10:30, 보내자원고_Column
전쟁 면역 사회
 
일상적 전쟁 상태가 60년 넘게 이어진 한반도는 ‘전쟁 면역 공동체’다.
대다수 사람들은 진짜 전쟁을 경험하지 않았지만,
전쟁의 비참함 은 잘 알고 있다. 비참함에 면역될 순 없다.

임재성 (평화 연구자) 

 
[418호] 승인 2015.10.01
 
아무도 사재기를 하지 않았다. 목함지뢰 사건 이후 남북 간 군사적 긴장감이 고조되면서 휴전선 인근 주민들에게 대피 명령이 내려졌고, 북한 잠수함이 가동되었다는 뉴스까지 연일 언론을 채웠지만 시민들은 차분했다. 이번만의 예외적 모습도 아니다. 2010년 연평도 포격으로 민간인까지 사망하고, 전 세계 기자들이 인천에 모여 한반도 전쟁 위기를 보도했지만 평범한 한국 사람들은 동요하지 않았다.
 
이를 ‘안보 불감증’이라 평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북한 하면 ‘빨갱이’ 소리가 자연스럽게 나오는 사회에서, ‘아직 전쟁 중이다, 휴전일 뿐이다’라는 협박이 이어지는 사회에서 불감증이라니. 네덜란드 레이덴 대학의 박강성주 교수는 일상적 전쟁 상태가 60년 넘게 이어진 한반도를 거대한 ‘전쟁 면역 공동체’라고 분석했는데, 시민들의 지나친 차분함은 이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늘 전쟁에 노출되어왔기에 전쟁에 면역되어버린 사회. 연천 지역 주민들이 대피소에서 밤을 새운 8월21일, 서울 시민들은 평소처럼 금요일을 즐겼다. 전쟁을 ‘정상 상태’로 받아들이는 한국 사회의 군사주의가 만들어낸 풍경이었다. 
 
전쟁을 늘 옆에 두고 살았던 사회는 전쟁을 ‘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자 예비역 몇 명이 자신의 SNS 계정에 “명령 대기 중이다” “불러만 달라”는 글과 함께 군복 사진을 올렸다. 국방부와 육군은 이 글들을 공식 계정을 통해 퍼나르며 “든든하다”고 추어올렸고, “나도 총 쏠 수 있다”라는 댓글도 이어졌다. 탈냉전 이후 한국 정도 규모의 국가가 자국을 전장으로 해서 전쟁을 벌인 적은 없고, 벌일 수도 없다. 잃을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사람이 죽고, 사람을 죽이는 문제이다. 그러나 전쟁 면역 사회에서 전쟁은 기꺼이 감수할 무엇이며, 필요한 것이 된다. “나도 총 쏠 수 있다”는 “나도 사람 죽일 수 있다”와 같은 뜻이다. 이런 이야기가 추앙되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더 이상 전쟁에 놀라지 않는다.
 
전쟁에 놀라지 않는다는 것은, 전쟁에 대해 체념한 것이기도 하다. 전쟁에 익숙한 사람들이지만, 개입하거나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군사적 긴장이 끝날 때마다 그랬던 것처럼, 지금도 국방비 증액 이야기가 나온다. 비무장지대(DMZ)의 전투력과 대잠수함 전력을 강화하기 위해 국방비를 대폭 늘리겠단다. DMZ가 새롭게 군사적 요충지가 된 것도, 북한 잠수함이 갑자기 늘어난 것도 아닌데, 더욱이 북한 전체 국가 예산보다도 많은 돈을 수십 년간 국방비로 써왔는데도 여전히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러한 비상식에 대해 분노하거나 반대하지 않는다. 전쟁이라는 거대한 이름 앞에서 체념할 뿐이다.
 
 
접경지역 주민들이 대피소로 내려가면서 느꼈을 두려움
 
무섭고 두려워야 하지 않을까. 면역에서 깨어나는 시작은 휴전선 접경지역 주민들이 대피소로 내려가면서 느꼈던 두려움을 나누는 것일지도 모른다. 즉시 대피하라는 방송에 황급히 대피소로 피한 연천군 주민들 중 짐을 제대로 챙긴 이는 거의 없었다. 대피소에서의 1시간이 밖에서의 10시간과 같다며, 공포와 답답함에 지쳐갔다. 전쟁의 가능성만으로도 인간은 이처럼 비참해진다. SNS에 군복이 아닌 비상식량 사진을 올리며 ‘전쟁 나면 도망가겠다, 그러니 전쟁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이어져야 했던 것 아닐까. 긴장을 고조시킨 주원인은 확성기 방송이었다. 전쟁 나면 싸우겠다가 아니라, 확성기 방송 중단하라고, 전쟁이 아닌 외교를 하라고 주장해야 하는 게 아니었을까. 나를 포함해 이 글을 읽는 대다수 사람들은 진짜 전쟁이 어떤지 모른다. 그러나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비참한 상황이 전쟁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비참함에 면역이 될 수는 없다.
2015/12/02 10:30 2015/12/02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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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02 10:25, 보내자원고_Column
‘시원한 보복’에 대하여

북한의 무력 도발은 상수에 가깝다.
이 오래된 현실 앞에서 보복을 외치는 것은 가장 쉬우면서도 무능한 선택이다.

슬픔을 이유로 야만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

[414호] 승인 2015.08.20 

“다 같이 슬퍼하자. 그러나 다 같이 바보가 되지는 말자.” 9·11 테러 직후 비평가 수전 손택의 대중 연설 내용이다. 3000명이 넘는 사람이 테러로 희생되자 미국 사회는 이성을 잃었다. 의회는 대통령 조시 부시에게 무력행사에 관한 백지수표를 넘겼고, 부시는 그 백지수표를 신나게 흔들며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차례로 폭격했다. 보복전쟁에 반대한 이들에게는 ‘테러를 옹호하는 것이냐’는 비아냥거림이 쏟아졌다. 그렇게 바보가 된 미국의 보복이 어떻게 끝났는지는 모두가 아는 바와 같다. 미국은 천문학적인 재정적자를 떠안았고, 탈레반은 여전히 건재하며, 이라크는 지옥이 되었다.
 
8월4일 비무장지대 지뢰 사고가 발생한 이후 정부의 강경 대응을 마주하며, 지금 우리가 바보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섬뜩했다. 군 당국은 청와대와 논의했음을 자랑스레 내세우며 2004년 이후 중단되어왔던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했다. ‘대북 심리전’이라고 포장되어 있지만 숨은 의도를 짐작해보면, 북한이 확성기를 조준 사격해주기를 원하는 것일 수도 있다. 마땅한 군사적 대응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북한의 조준 사격만 이루어진다면, 즉시 10배, 100배 타격할 명분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면 위험할까? 지금 우리 군은 북한의 공격을 원한다. 제대로 보복할 명분을 위해서.
 
지뢰 사고 현장에 있었던 소대장은 기자회견에서 “다시 그 지역으로 가서 해당 적 GP를 부숴버리고 싶은 마음밖에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이 말이 소대장의 진심이라 하더라도, 사전에 조율되지 않았을 리 없다. 군 당국의 생각이라고 봐도 무방하지 싶다. 이미 “국민이 시원하게 느낄 보복 방안 검토 중”이라는 군 관계자의 발언까지 보도되는 상황이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는 지금 보복을 준비하고 있다. 그렇다면 물어보자. 대한민국이 몇 명이나 죽여야 ‘시원한 보복’인가. 그렇게 죽어갈 북한의 이름 모를 젊은이들은 이번 목함지뢰 사건에 어떤 책임을 지니고 있는가?
 
우리는 가장 호전적인 국가를 머리 위에 이고 살아가고 있다. 북한의 무력 도발은 상수에 가깝다. 비극이지만 현실이다. 이 오래된 현실 앞에서 보복을 외치는 것은 가장 쉬우면서도 무능한 선택이고,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밖에 없는 선택이다. 천안함 사건 직후 5·24 조치로 북한과의 교류를 전면 중단했지만 결국 손해를 본 것은 한국이었다. 연평도 포격 이후 중국의 비난을 감수하면서 미국 항공모함까지 서해로 끌어들였지만 우리가 얻은 것은 없다. 어렵지만 지금의 문제를 실제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강경한 대응, 몇 배의 보복이 어떤 도움이 됩니까?”
 
2010년 연평도 포격 직후 국회는 ‘북한의 무력 도발 행위 규탄결의안’을 채택했는데, 당시 진보신당 조승수 국회의원은 유일한 반대 토론에 나섰다. 반대 토론을 하러 나가는 순간부터 ‘저 빨갱이 보라’며 다른 의원들의 야유가 쏟아졌다. 묵묵히 읽어 내려갔던 그때의 토론문은 지금도 유효하다. “지금 정부 일각과 일부 정치인들이 얘기하고 있는 강경한 대응, 몇 배의 보복, 즉각적인 응징, 과연 이런 것이 한반도 평화에 어떤 도움이 되겠습니까? 우리 국회는 이 문제의 원인을 짚어내고 항구적으로 평화체제를 어떻게 건설할 것인지 분명하게 담아내야 합니다.”
 
중상을 당한 김정원 하사와 하재헌 하사께 안타까운 마음을 전한다. 긴급한 순간에도 동료를 구하기 위해 당신들이 보였던 모습에 시민들 모두 오랜 시간 고개를 숙일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이 슬픔을 이유로 김정원 하사와 하재헌 하사를 다치게 했던 야만을 우리 손으로 다시 행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우리가 개탄하는 악을 닮아가지 말아야 한다.
2015/12/02 10:25 2015/12/02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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