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오래 되었지. 네 편지 무척 기다렸어.
한번쯤 너의 무성의와 나무같은 감정을 나무랐단다.
가을이지. 바보의 머리에도 한줄 운치가 흐를 것만도 한 계절인데
바쁜 생활에 획일화된 우리기에 메말라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너의 곳 뒷산 언덕도 지금은 붉게 붉게 변했겠지. 조용히 한번 그려본다.
어떻게 무성의일까? 그건 결코 아니라네.
수차례에 걸친 편지. 통 무반응이니 어디 답답한 마음이야.
기다림이 지겨웠었다 할까, 차츰 기대 속에서 체념으로 남겨 두려 하네.
이 곳 나의 부대 주위에도 몇 그루의 은행,
단풍나무가 멋지게 물들었는데 시간을 내어서 편지 속에
조그만 잎파리 몇 개를 부치려 한적도 있는데
그 곳은 더욱 아름다우리라 생각하고 그만두었네.
할말이 무척이나 많았었는데 필을 들고 보면 날아가 버리는 나니까 어쩌나.
끝으로 짙은 가을, 또 초겨울 건강하고 보람있는 생활이 되길 비네.
                                   1972년 10월 28일. 대구에서 '열'이가

PS. 그 곳에서 교육 받고 있는 동기생들, 벗이나 해주게나 그려.